내게 필요한 해답은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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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필요한 해답은 내 안에 있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2.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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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드를 사랑한 ‘스굴드’ 이야기
몇 년 전, 눈 덮인 산속에 동백이 선혈鮮血처럼 피었을 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한 사찰을 찾은 적이 있었다. 외로운 객승에게 내어준 잘 다린 차 한 잔을 입에 머금고, 혀를 굴려가며 맛을 음미하던 때였다. 주지스님께서 출타에서 돌아오셨다 하여 인사를 드렸더니, 처음 보는 나와 도반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풀어내신다. 차에 흠뻑 취해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니 이번에는 음악공양이다. 주지스님은 현의 마지막 울림까지 세밀하게 들을 수 있는 장비까지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눈 내리는 산사에서 눈과 귀와 입이 잊지 못할 호사를 누렸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행복한 클라시쿠스』라는 책에서 인상적인 스토리를 읽게 되었다. 음악을 사랑한 한 스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읽다보니 예전에 만행 중에 들은 한 스님의 이야기인 것 같아 반가웠다. 물론 실제로 그분을 만난 적은 없다. 다만 나또한 음악을 늘 가까이 하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잘 아는 분 같고, 친근하게 느껴졌을 따름이다. 

음악평론가 정만섭 씨가 쓴 이 글의 내용은 이러하다. 꽤 오래 전에 자주 가던 음반점이 있었는데, 그곳에 자주 드나들던 스님이 한분 계셨다. 남루한 승복을 입고 다 해진 걸망을 메고 온 스님은 항상 ‘글렌 굴드’의 음반만을 사가곤 했다. 그래서 ‘스굴드’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겸손하게 굴드밖에 모른다던 스님은 굴드의 모든 것을 아는 분인 것 같았다. 스님의 초대로 암자에 찾아가니, 좋은 오디오 시스템에 굴드의 거의 모든 음반이 구비되어 있어 놀랐단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스님이 음반점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소문에 듣자하니 암에 걸렸다고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5년 후쯤, 음반점에서 굴드의 음반을 보고 있는 스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날 스님은 음반을 사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찾아간 스님의 거처, 이번에는 아무런 물건도 남아있지 않고, 오직 작은 라디오 한 대만이 스님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하다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였다. 그 모습이 마치 모든 소유를 내려놓고 마음의 평온을 찾은 부처님을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글쓴이는 밝힌다. 글렌 굴드를 통해 득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 이 스님, 세상에 계시지 않은 지가 이미 오래여도 여전히 종종 생각나곤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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