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크의 길, 사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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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크의 길, 사람의 길
  • 만우 스님
  • 승인 2015.02.2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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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린포체(수미산) 가는 길 – 둘

 

| 백색 은빛이 된 황금평원

선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온통 흰 색, 가벼운 현기증이 몸을 흔든다. 잠시 눈을 감는다. 물소리, 바람소리, 눈을 밟는 소리, 야크의 방울소리, 그리고 까마귀 울음소리, 소리들만 평원에 풍성해진 느낌이다.

사진을 통해서 기억 속에 저장된 셀숑Sershong 평원의 풍경은 가운데 라 츄(La Chu, 神川)가 흐르고 녹색초원에 야크 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순례자들의 유심을 무심으로 바라보는 환상의 공간이었다.

셀은 티베트어로 황금을 뜻하고 숑은 접시 혹은 병을 일컫는다. 황금접시 모양의 평원, 황금 같은 귀중한 가치를 지닌 장소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셸숑은 티베트 문화권에서 사원이나 지명에 널리 쓰이는 말이다. 셀숑 평원 안에, 비로소 성지의 입구임을 알리는 강니 초르텐Kangni Chorten,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티베트인들의 염원을 담은 타르쵸를 높이가 24미터에 달하는 큰 기둥에 매달아 세우는 장소인 달포체Darpoche, 그리고 대성취자인 마하싯디들의 천장터天葬垈, 최초의 사원인 최꾸곰파Choku Gonpa가 있으니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황금보다 귀중한 성지라 할 만하다.

보통 황금은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의 고귀함을 상징해서 붓다의 몸은 황금빛이고 모시는 곳은 금당이며 말씀은 금구성언이라 일컫는다. 수행의 제련과정을 거쳐 순정한 황금으로 탈바꿈한 존재를 붓다라 한다면 제련과정을 거치지 않은 금광석의 상태를 중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붓다나 중생이나 황금성黃金性을 지니고 있는 동질이형同質異形이다. 이분화된 가치의 관념체계–중생과 부처, 번뇌와 보리, 윤회와 열반 등–를 좀 더 제련한다면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고 생사가 즉 열반이라는 공성空性을 얻을 수 있고 이것은 백색에 가깝지 않을까? 이 황금평원이 지금은 온통 백색 은빛 평원으로 바뀌었다.

풍경이 은빛으로 단순화되면서 시선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눈이 쌓이지 않아 선명한 풍경이 눈앞에 드러나 있었더라면 풍경에 초점을 맞추느라 마음이 부산을 떨었을 터인데 내려놓으니 여유가 생긴다. 성스러운 곳은 성스런 행위가 발현될 때 성聖이 유지된다. 성소이기에 성소가 아니고 제련의 불꽃이 발화되고 용광로가 되어 순금이 현시될 때 그곳이 성소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 성소이다. 역설적으로 성소 아닌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중생이 부처가 되고 본질적으로 중생과 부처가 차별이 없는데 삼라만상이 법신이고 성소가 아니겠는가.

직시하면 지금 나는 미망에 놓여 있는 중생이고 안목이 깊지 않아 성소라고 하는 곳을 봐도 깊은 울림이 없고 성자가 옆을 스쳐가도 알아보지 못한다. 성스럽고 위대한 것은 본다고 만난다고 바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평원의 성스럽고 위대한 존재들은 어차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그러한 경지에 다다르면 어느덧 곁하고 벗하고 있을 것이다. 가볍게 나를 달래고 풍경을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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