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 모두의 밥상으로 진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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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 모두의 밥상으로 진화하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12.3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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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겨울의 맛 배추와 배추두부말이

사찰음식, 일반명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사람마다 기억하고 상상하는 사찰음식의 밥상은 제각각이다. 각자가 쌓은 경험과 기대가 다른 까닭이다. 사찰음식이란 누구에게는 볕 좋은 절 마당에서 쓱쓱 비벼먹는 비빔밥이고, 누구에게는 요리잡지에서 본 빛깔 고운 상차림이다. 혹은 오후불식, 일종식, 1식 3찬으로 일컬어지는 인욕의 식문화일 수도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만을 골라 사찰음식의 기준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누구나 동의할 만한 ‘사찰음식 교집합의 공식’은 낼 수 있겠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만들고 먹는, 오신채 없는 채식’이다. 이 뼈대에 각자의 살이 보태져 수많은 사찰음식이 탄생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것이 문화가 꽃피는 방식이다. 한해를 보내며 사찰음식 대중화 현장의 일꾼들이 모였다. 그들이 말하는, 불교의 ‘고유영역’을 넘어 ‘모두의 밥상’으로 진화하는 사찰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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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위를 견디며 맛이 드는 채소, 배추
‘숭菘’. 배추를 적을 때 쓰는 한자다. 본디 타고난 생명력이 이름에 담겼다. 소나무 송松에 초두머리가 얹힌 숭菘은 옛날 야생배추가 겨울에 말라 죽지 않고 소나무처럼 푸르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백숭白菘, 백채白寀로 불리다 지금의 배추가 되었다. 문헌 속 배추의 흔적은 고종 23년(1236년) 『향약구급방』에서 처음 발견되며 이후 여러 농서에도 자주 언급되나 채종기술이 부족해 지금처럼 흔하게 먹기는 어려웠다. 배추가 보편적인 식재료가 된 것은 신품종이 보급되기 시작한 1세기 전부터다.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푸성귀다. 18~20도에서 잘 자라고 이보다 낮은 15~18도에서 속이 여문다. 봄부터 가을까지 재배 가능하며 김장철에 출하되는 배추는 8월 15일을 전후로 파종한다. 여름에는 고도가 높고 기온이 낮은 강원지역에서 자란 고랭지배추를 선호하는데, 돌밭이라 배추 이외에 심을 것이 별로 없는 태백이 대표산지에 속한다. 평창, 정선, 영월 등지에서도 많이 난다. 초겨울에는 해풍을 맞고 자란 해풍배추가 대량출하되며 해남을 위시해 서산, 신안, 부안, 진도 등지에서 남해와 서해에 면한 땅에 배추농사를 짓는다. 김장배추는 11월 말, 12월 초가 가장 맛있고, 이는 새벽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배추가 스스로 냉해를 막고자 수분을 내보내니 당도가 높아지는 까닭이다.

날씨와 해충의 영향을 크게 받아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농작물로 배추만 한 게 또 없다. 풍작일 때는 산지 가격이 40원도 하고 이상기후일 때는 만 오천 원에 팔리며 ‘금추’, ‘배추대란’이라는 신조어를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식재료이기에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고 배추농사를 짓는 농부에게선 보살의 심성이 읽힌다.

배추 맛이 잘 든 초겨울이면 사찰에서는 배추를 다져넣어 만두를 해먹는다. 산사의 텃밭은 기후가 서늘하여 산사에서 직접 기른 배추는 유독 달고 맛이 좋다. 배추된장국이나 배추된장무침, 배추전으로 담백하게 먹기도 하고, 배추 고갱이(안쪽의 연한 이파리)와 무채를 넣어 밥을 해서 양념장을 곁들여 내기도 한다. 스님들에게 배추는 식재료가 귀한 겨울산사의 공양시간을 풍성하게 해주는 고마운 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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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 울력의 땀방울 씻는 배추두부말이
“김장이 끝난 후 조실스님은 버린 시래기 속에서 먹을 수 있는 시래기를 다시 골라 엮고 있었다. 나도 조실스님을 도와 시래기를 뒤졌다. 조실스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식물食物은 아껴야만 하겠지요. 식물로 되기까지 인간이 주어야 했던 시간과 노동을 무시해 버릴 순 없잖아요.’ 나는 침묵하면서 시래기를 뒤적일 뿐이었다. 진리 앞에서 군말이 필요할까.” 
- 『선방일기』 ‘김장 울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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