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현정破邪顯正, 삿됨을 부숴 올바름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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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破邪顯正, 삿됨을 부숴 올바름을 드러내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12.3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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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적명 스님(문경 봉암사 수좌), 류지호(월간 「불광」 편집주간)

 

부처님 오신 날을 제외하고는 개방되지 않는 희양산문曦陽山門 봉암사가 창간 40주년을 맞이한 「불광」 편집부에게 입장을 허락했다. ‘수좌 중의 수좌’라고 불리는 적명 스님과 류지호 편집주간이 보림당寶林堂에 마주앉아 파란곡절 했던 현대 한국불교의 역사를 돌아보았다. 긴 세월을 훑어가며 나눈 대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스님이 겪었던 이야기와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한 제언을 들으며 문득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 떠올랐다.

| 천칭天秤과 분동分銅을 들다

류지호 스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부처님 오신 날 이외에는 일반인들에게 열리지 않는 봉암사인데 이렇게 특별하게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적명 스님 반갑습니다.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불광」 참 잘 보고 있습니다. 기획도 잘 하고 표지도 매우 세련됐어요. 항상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는 잡지입니다.

류지호 감사합니다. 스님, 올해로 조계종 종단개혁불사가 20주년이 되었습니다. 1994년 개혁회의가 7개월 동안 진행 됐었을 당시, 종헌 전문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갈 때 스님께서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대화를 이끌어내고 성사시켰다고 들었습니다.

적명 스님 벌써 20년이나 됐습니까? 참 시간이 빠르네요. 1994년 당시에는 비로토굴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토굴에 있는데 내원사 비구니 스님이 찾아와서 성우 스님한테 전화가 왔다고 하더군요. 스님이 제게 전화할 일이 없는데 말이지요. ‘이상하다, 무슨 일일까.’ 생각하고 전화를 받으니 스님께서 그러시는 겁니다. “스님, 큰일 났어. 스님이 좀 와봐야겠어! 지금 종단을 교종敎宗을 만들라코 해야! 지금 옆에 진제 스님도 있어!” 상황을 알아보니 종단의 종헌 전문에 종조설과 관련해 스님들 간에 의견충돌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보조 스님이 종조인지, 태고 스님이 종조인지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그 의견충돌 때문에 수좌스님들이 내일모레 종헌 전문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해인사에서 결의대회를 하기로 했다는 상황이었습니다.

류지호 종헌 전문과 관련해 서로 의견차가 큰 상황에서 서로의 의견을 좁혀 조율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스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셨는지요?

적명 스님 누구라도 나서서 함께 이야기해보면 사전에 조율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 번 해보자 싶어 총무원에 있는 도법 스님에게 연락을 했지요. 도법 스님이 “저희들은 언제든 대화의 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라고 의사를 전달해주기에, 개혁회의 측 대표로 몇 사람과 나를 포함한 수좌 대표 몇 사람이 만나 사전에 이야기를 나눠보자 결정했습니다. 개혁회의 대표로 열댓 명, 수좌들은 서너 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했지요.

수좌회의를 통해 수좌 측 대표를 열 명 정도 선임하겠다. 개혁회의 쪽도 종헌을 실제로 다루는 학담 스님을 위시해 몇 사람 선임해 수좌 대표들과 함께 합숙시키자. 종헌전문 개정에 있어 서로 합의가 될 때까지 밖에서 문을 잠가 버리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쉽게, 한 시간이 채 안돼서 의견 일치를 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해인사 수좌대회가 열렸습니다. 대략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대표 몇 명을 선임해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해 개혁회의 대표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종헌 전문 개정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지요.

류지호 종헌 전문 개정은 어떤 점이 쟁점이었습니까?

적명 스님 종조 논란에 대해 맞춤법이나 적절치 못한 언구들 정도만 수정하고 원래 종헌 전문을 그대로 사용하자고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섣불리 종조가 ‘태고 스님이다’, ‘보조 스님이다’라고 당장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종단에 연구위원회를 둔다던지,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검토해 신중하게 결론을 내려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류지호 스님께서는 1980년 10・27 법난 직후에도 종단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힘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적명 스님 10・27 법난 직후에는 수좌스님들이 전부 다 서울에 올라가서 총무원에서 한 철, 그러니까 3개월 정도를 살았었지요. 저도 마하사에 있다가 부랴부랴 서울에 가게 됐습니다. 고우 스님, 활성 스님, 휴암 스님도 같이 계셨고, 무여 스님도 조금 뒤에 합류했습니다. 그렇게 급히 서울에 가서 보니까 전두환이 불교계를 정화한답시고 스님들을 가둬버리고 총무원을 탈취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전창열 육군 중령을 교단 안정의 책임자로 앉혀 놓았더군요. 전 중령이 우리를 보자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것 같다고, 어떻게 일을 헤쳐 나가야 할지 막막했었는데 이제야 숨이 놓인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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