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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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12.3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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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당신의 말을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어줄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나를 이해해주면, 
나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누군가가 진정으로 들어주면 
암담해 보이던 일조차도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돌이킬 수 없어 보이던 혼돈도 
누군가가 잘 들어주면 
마치 맑은 시냇물 흐르듯 풀리곤 한다.
-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 중에서


| 모난 돌들의 대화
청취자 : 자폐를 앓고 있는 아이를 태우고 치료센터 가면서 매일 방송 듣고 있습니다. 스님 목소리를 들으면 항상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고맙습니다.
진행자 : 그러시군요. 아이와 함께 가는 치료센터. 저도 늘 동승하고 있군요. 다행이네요. 오늘도 힘내시고요. 평온하고 행복한 날들이길 기원할게요. 에너지 필요할 때 또 연락주세요. 이 방송을 청취하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BBS 라디오 ‘아침풍경’을 진행하며 아침마다 세상으로부터 전해져오는 메시지를 읽는다. 뭉클했다가 설레었다가. 반복되는 메아리처럼 하루하루 울고 웃는다. 가슴속에 남게 될 사연 깊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어느새 우리는 도반이 된다.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건 이제 의무사항이 되었다. 생활의 자잘한 이야기들까지 속속들이 재잘대며 신뢰를 쌓아가고, 누군가 힘겨운 사연이라도 올리게 되면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물결처럼 퍼진다. 설령 그들의 삶에 슬픔과 회한이 가득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스런 존재들일 뿐이다. 

돌아보니 벌써 2년이다.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와 격려의 방송을 시작한 지 그렇게나 되었다. 물론 예상대로 처음엔 별로였다. 아니 나빴다고 해야 더 솔직하겠다. 서툴고 부족했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얼굴이 빨개졌고, 길거리 호객행위에서도 들을 수 있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나는 말문이 막히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방송을 하는 동안,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도리어 상처가 되는 날도 있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굳건한 믿음도 더러는 뒤틀리는 심사에 흔들렸다. 다만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던 건 매일매일 내 목소리를 들어주고, 이야기를 건네주는 전파 너머에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련된 아나운서처럼 완벽하진 못했지만, 그들과 함께 소통하며 나는 우리(나와 청취자)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마치 모난 돌들의 대화처럼 말이다.

내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전해졌을 때, 저들은 과연 어떤 느낌을 받을까? 늘 궁금했다. 어쩌다 녹음한 방송이라도 듣게 되면,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목소리가 쑥스러워 ‘닭살이군~!’ 하며 피식 웃기도 했다. 뜨뜻미지근한 나의 음성도 저렇게 스피커를 통해 들으면 뜨겁고 살가울 수 있구나 싶어 부끄럽게 혼자 미소 지을 때도 있었다. 역시 대화가 있는 방송이 따뜻하다.  


| 아픈 이야기가 상처를 치유한다
방송을 하다 보니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명상음악에서부터 팝, 클래식, 재즈까지. 게다가 언젠가부터는 주의 깊게 듣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말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소리가 내 귀에 와 머무는 순간 사랑이 되고 믿음이 되고, 또 상처가 되었다. 본 것은 쉽게 잊혀도 들은 것은 잘 잊히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나쁜 말, 불쾌한 말은 더 오래 이근耳根에 머물렀다. 귀를 뚫고 가시처럼 가슴에 와 박혔고, 오랫동안 빼내기 힘들 때도 있었다. 그만큼 귀에 업業이 많은 증거인가보다 싶었다. 

사람의 신경 중 청각신경이 시각신경보다 정보를 더 오래 기억한다더니. 그 말이 맞나보다. 목소리와 연주가 어우러진 음악들이 사람 마음속에 깊이 파고드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노랫말 한 소절에 흘리는 눈물도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나처럼 절집 생활과 동시에 타향살이가 일찍 시작되었거나 타국살이를 오랫동안 하고나면, 그리움과 한恨의 정서를 또래보다 훨씬 더 빨리 공감하고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나의 특별한 공감능력(눈물)도 실은 다 이 때문이다.

한의 정서를 이야기하니 언뜻 생각나는 곡이 하나 있다. ‘임진강’이라는 북한 민요다. 재일교포 감독이 만든 ‘박치기’라는 영화의 주제가이기도 하다. 이 음악을 들을 당시, 나는 한참 재일교포 친구 영희와 가깝게 지내던 터였다. 그래서 재일교포 2세, 3세들이 학창시절 겪었던 고통에 공감하고 분노하던 때였다. 교토(京都)의 어느 겨울밤, 차디찬 다다미방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털모자를 눌러쓰고 TV에서 이 영화(박치기)를 보았다. 교포들의 슬픈 현실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어 너무나 마음 아픈 영화. 재일교포 경자를 사랑하는 일본인 청년 코우스케도 참 안타까웠다. 여리고 착해서 더 애가 탔다. 아무튼 그날 밤, 코우스케가 부르는 임진강을 들으며 긴긴 겨울밤에 꺼이꺼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뭐가 그리도 서러웠는지 원. 그땐 아리랑보다 이 노래가 몇 배는 더 한스러웠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뭇 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 ‘임진강’ 노랫말 중에서

한 곡의 노래에 이렇게 온통 감정을 실을 수 있는 건 그 안에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속에 몰래 감추고 살아왔던 이야기, 거미처럼 온종일 다락방 구석에 처박혀 오직 목숨 붙어 살아있음을 슬퍼하고, 부모형제와 모국을 원망하던 그 서글픈 한의 이야기가 노래 속에 배어있기 때문일 테다. 얼마 전, 운전 중에 이곡을 라디오에서 다시 들었다. 코끝이 찡했다. 영희는 잘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재일교포 3세와 결혼했다는데. 잘 보듬고 살겠지. 휴우~’ 노을이 지자 그리움이 강물처럼 흘렀다.


| 부처님의 목소리는 어땠을까?
나는 가끔 부처님의 목소리 톤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사람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습관이 생긴 뒤부터 그런 생각이 부쩍 더 들었다. 부처님의 성상을 바라보면, 인도 부처님은 가끔 가던 인도음식점의 주인아저씨 목소리와 비슷한 느낌이 날 것만 같다. 중국 부처님은 왠지 공자님처럼 거대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씀하실 것만 같고, 일본 부처님은 언제 보아도 낯설지만 목소리는 굉장히 친절하실 것 같다. 우리나라 부처님은 글쎄…. 여러 가지 느낌이 연상되지만, 대체로 재밌고 다정다감할 것 같다. 더러는 엄격한 저음으로도 말씀하시겠지? “네 이놈!” 하고.(개인적으로 나는 시골 농부처럼 선량한 느낌의 부처님을 좋아한다. 편안하고 구수한 느낌에 별 말씀 없이 자주 미소 짓는 그런 부처님이었으면 좋겠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실생활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율장을 공부해서인지 나는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에 매료된 지 오래다. 예전에는 꿈도 자주 꿨다. 부처님이 등장하는 꿈. 흐흐흐. 인간부처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다정하고 따뜻한 느낌의 인간부처님을 아주 좋아한다. 웃을지 모르겠지만, 실은 부처님의 싫은 면도 있다. 사고 친 제자에게 알면서도 따져 묻는 모습. 그럴 땐 부처님이 더러 얄밉게 보인다. 심지어는 반복해서 묻기까지 한다. 

어쨌거나 부처님은 ‘대화의 종교’ 불교를 만들어냈다. 절대자에 의한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항상 상대에게 묻고 답했다. 그야말로 소통의 달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까지 함께 걸어갈 인생을 보여주셨다. 우리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셨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 묻고 자신을 등불로 삼아 직접 찾아가라고 얘기해주셨다. 해질녘에 다리 뻗고 울지 말라고, 후회하지 않는 법을 일러주신 것이다. 

한해가 다 지나갈 때면 할 얘기가 많아진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들어야 할 말도 많다. 시간은 흘러 올 한해도 벌써 될 대로 되어버렸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불행에 부딪혀 끝나버렸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와도 이젠 소용없다. 말해 무엇 하랴 싶지만, 그래도 꺼내보자. 말이라도 한번 해보자.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우리의 인생을 나눠보자. 그리고 나면 다가와 있을 테니. 최선을 다해 다시 도전할 시간들이. 


원영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계율과 불교윤리 분야). 운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선원 안거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2008년 「대승계와 남산율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대승계의 세계』, 『계율, 꽃과 가시』, 『인생아, 웃어라』 등이 있다. 현재 BBS불교방송 ‘아침풍경’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앙승가대학교 외래교수로서 강의와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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