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법문] 불교의 핵심은 ‘중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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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불교의 핵심은 ‘중도’다
  • 고우 스님
  • 승인 2014.12.3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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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부다가야에 가보셨나요? 그곳에 가면 보리수나무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 나무 아래서 7일간 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럼 부처님이 얻은 그 깨달음이 무엇이냐.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깨달음의 핵심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국불교는 그간 이 문제에 너무 소홀했어요. 1만 2천이나 되는 스님들 중에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됩니까. 재가신도님들의 사정도 별반 다를 것이 없지요.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이해한 만큼 행복해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는 건 우리가 불교의 핵심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몇 퍼센트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불교의 핵심에 대해 저의 짧은 이야기라도 듣는 것이 전혀 모르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부처님이 깨달았다는 말은 뭘 깨달았다는 거냐. 한 마디로 요약하면 중도를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고를 이분법적으로 합니다. 가족이란 아내와 남편이 함께 모여서 구성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너와 나를 서로 나눠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식에게도 그렇게 합니다. 이웃 간에는 다릅니까? 사회생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또한 정치권은 가장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집단입니다.

부처님도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던 시기에는 그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음에도 괴로움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어 존재의 실상을 이해하고부터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무너집니다. 그래서 남을 이롭게 하고, 도와주는 사고방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중도를 이해해야 불교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절만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불자가 아닙니다. 그건 껍데기일 뿐이에요.

중도를 이해하지 못할 때는 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하루 24시간 내리 그 생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심지어 악몽을 꾸면 꿈속에서도 내가 도망갑니다. 꿈은 무의식이죠. 무의식 너머 잠재의식에서까지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걸 뿌리 뽑아야 합니다. 그것은 허울이다. 뽑아내자. ‘나’는 없다. 그걸 이해하면 비로소 매일매일 좋은 날이 펼쳐집니다. 순간순간 좋은 날이 됩니다. 스님이 너무 허황한 얘기를 하는 것 아닌가? 과연 그런 방법이 있는가? 하겠지만 그런 방법,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얘기해서 아직 꿈에서까지 ‘나’를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모르고 살 때와 알고 있을 때, 그래서 깨어 있을 때만이라도 그렇게 하려고 할 때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당연히 후자가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내겠지요. 우리가 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것은 무의식까지 변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이때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은 어마어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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