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문경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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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문경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 유윤정
  • 승인 2014.12.0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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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게 스며든 바른 가르침, 살아있는 죽비소리를 듣다

참선수행도량 문경 봉암사. 이곳은 전국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다던 휴대전화마저 터지지 않는, 세간과 완벽한 차단을 이루고 있는 수행정진도량이다. 단단하게 잠긴 봉암사의 빗장이 열리고, 일주문을 지나 봉암사 마당을 가로질러 보림당寶林堂으로 들어가니 봉암사의 수좌 적명 스님이 따스하게 맞아주었다. 희양산 암봉을 병풍삼아 자리한 봉암사, 그곳에서 친견한 적명 스님은 이야기 내내 소년 같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빛은 머릿속을 꿰뚫어 보는 것같이 맑고도 형형했다. 장시간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그 꼿꼿한 자세는 단 한 번의 흐트러짐이 없다. 상덕부덕上德不德, 높은 덕은 자랑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난다고 했던가. 적명 스님은 법명처럼 직접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고요하면서도 밝은 지혜와 바른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 어머니, 무덤 잘 만들어드리고

  출가하겠습니다!

“여기 봉암사에 오게 된 지도 정초면 6년째네요. 6년 전에 봉암사 대중들이 대중공사를 해 나를 데려오자고 이야기했나 봅니다. 그리곤 기기암에 있던 나를 찾아와 봉암사에서 조실로 자리해달라고 거듭 절실하게 예의 부탁을 하더이다. 여러 번 거절했는데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었어요. 그래서 ‘조실 이름 달 것은 못되고 그냥 수좌로 있겠다.’ 하고 봉암사에 오게 됐습니다.”

출가한 지 55년. 참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봉암사에 와서야 대중들의 간청으로 부처님 오신 날 참석 대중을 위해 겨우 정식으로 법상에 올라 법문을 했다는 적명 스님. 자신이 아는 것은 다른 스님들도 거의 다 알고 있기에 특별하게 따로 할 말이 없어 그동안 법상에 오르지 않았단다. 한없이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적명 스님은 수행과 법도의 모범이 되는 ‘수좌’ 그 자체였다. 그러나 선가禪家에 있어 모범이 되고 법도를 지도하는 수좌스님에게도 출가 이전에는 남 못지않은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다.

“제가 중학생 때는 공부를 전혀 안했어요. 항상 상의 단추는 풀어놓고 모자에 돼지기름을 발라서 삐딱하게 쓰고 다녔지요. 동네에서 ‘너 용태하고 놀기만 해봐!’라고 말할 만큼 불량학생으로 소문이 나있었어요.”

그러나 그 방황은 길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이렇게 살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던 그 순간부터 옷도 단정하게 입고 걸음걸이에 눈빛까지 고치려 신경 썼고, 공부도 열심히 해 제주도 도내에서 학업으로 손 꼽힐 정도로 좋은 성적을 얻게 됐다. 그런데 꿈을 위한 학문을 전공하고자 대입 재수를 하던 21살의 어느 날, 문득 출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고민은 너무나 강렬해서 한라산에 올라가 ‘과연 출가가 나에게 맞는 결정인가.’라는 고민으로 일주일씩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결국 몇 달간의 고민 끝에 인생의 진리를 추구하기 위한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는 제가 출가하면 죽겠다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어머니 무덤 잘 만들어드리고 출가하겠습니다.’라고요. 출가 결심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세월이 지나고는 어머니도 좋게 받아들이셨습니다.”

어린 청년은 그 길로 나주 다보사에 찾아가 우화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하게 됐고, 15년의 토굴생활을 제외하면 전국 선방은 안 가본 곳이 없을 만큼 수십 년 동안 전국의 제방선원을 다니며 수행정진에 힘써 왔다.

 

| 운수납자의 시절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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