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佛像으로 맺은 불가佛家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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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佛像으로 맺은 불가佛家의 인연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11.0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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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불교미술관 불상조각장 이진형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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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 보살의 지혜, 보현 보살의 행원
“제게 있어 불상佛像은 전생부터 이생, 다음 생애까지 닿아있는 인연 같습니다. 내 삶에 있어 불교도, 불상도, 여진불교미술관도 모두 인연이란 것을 깨달았지요.”
이진형 관장이 한참 고민하다 내뱉은 인연이라는 단어, 그 두 글자가 그렇게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항상 부처님 모습을 떠올리고 부처님 가르침을 새기며 성상을 조성하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뿌리 깊은 불가佛家의 인연은 불모 40년의 세월 동안 4,000기에 달하는 부처님을 만나게 했다.
그가 불상과 맺은 첫 인연도 범상치 않았다. 14살 때부터 생계를 위해 작은 나무인형 공장에서 일을 배우던 소년은 훗날 젊은 나이로 공업품경진대회에 나가 무수한 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가내공업센터에서 강사역할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는데, 그 길로 1976년 젊은 기능공들을 소개하는 KBS ‘수출전망대’라는 TV프로그램에 몇 개월간 출연하게 됐다. 
마침 방송을 본 부산 내원정사 주지 정련 스님(동국대 이사장)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부산에 계시던 스님이 직접 그를 찾아와 부처님 일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22살 젊은 청년에게 내민 정련 스님의 손, 그렇게 맞잡은 인연으로 내원정사에서 5년, 해원정사에서 4년을 지내며 법당에 자리잡을 목조각들을 조성했다.
“당시 내원정사에 정련 스님의 은사이신 석암 노스님이 계셨어요. 스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남다른 그리움이 솟아오릅니다. 노스님께서 ‘불교조각연구소’라는 휘호를 내려주셨어요. 그래서 부산에 터를 잡고 부처님 모시는 공방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혈혈단신으로 차린 공방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 어느덧 100여 명의 제자와 직원들을 데리고 일을 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그는 잘 나가던 공방을 훌쩍 후배들에게 넘겨버렸다. 혜원정사 불사 때 유발상좌로 인연을 맺은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부처님으로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 정직과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성상을 조성해도 모자랄 판인데 사업이 되면 거짓도 따르고,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도둑질도 해야 한다. 다작多作이 뭐가 중요하냐, 이 세상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한 분의 성상을 모시는 것이 중요하다.”
스님의 말씀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부처님을 조성하면서 내 마음의 모자람을 깨닫고 뒷골이 찡해지던 그 순간, 그 길로 공방을 정리했다. 문수 보살의 지혜를 얻었어도 보현행원이 따르지 않으면 그 길을 완성할 수 없듯이 공방을 정리하고 제대로 된 성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 계기가 된 장본인이 바로 고산 스님이다. 스님의 말씀은 그의 삶의 화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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