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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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음식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7.0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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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금수암 대안 스님

경남 산청군 금서면에 소재한 금수암에서 대안 스님과 사찰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 박사가 생각났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오랫동안 침팬지 연구를 해온 것으로 잘 알려진 제인 구달 박사는 은퇴 후 모국인 영국으로 돌아가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음식운동을 하고 있다. 그가 음식운동을 하게 된 것은 손자들 때문이었다. 영국에 돌아와 손자손녀들이 먹는 음식을 보니 한 마디로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이 아니었다. 그리해서 손자손녀들이 온전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여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제인구달 박사는 우리나라에도 여러 번 왔는데 올 때마다 절을 찾아 발우공양을 한다. 그가 금수암에 와 대안 스님을 만난다면, 사찰음식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까? 

| “음식이 병도 되고 약도 되지요”
필자가 대안 스님을 만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3월 초 서울에서 열린 불교박람회 사찰음식 컨퍼런스에서 스님을 처음 만났다. 그때는 인사동에 있는 사찰음식전문점 ‘발우공양’의 책임을 맡고 계신 분 정도로만 알았다. 이번에 금수암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스님이 직접 준비한 사찰음식을 먹으면서 대안 스님의 사찰음식 세계를 알게 되었다. 제인 구달 박사는 손자손녀로 인해 음식운동에 뛰어들었는데 대안 스님에겐 어떤 계기가 있었을지 궁금했다. 직접 음식을 만드시는 분이니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역시 손맛은 내림이라는 걸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출가 이후의 일이에요. 늘 채공소임을 하다 보니 노스님과 은사스님께 절 음식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고 강원 졸업 후 선방을 다니면서 질병 때문에 투병생활을 하면서 음식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지요. 내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수행자로서 주변에 폐를 끼치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그때 사찰음식에 눈을 떴죠. 지리산에 살면서 약초공부를 하고 동국대학교에서 식품영양학 박사논문을 준비하는데 그 과정에서 음식이 병도 되고 약도 되는 이치를 경험하기도 했지요. 음식으로 수행하고 세상에 회향하는 길을 가려고 그랬나 싶기도 해요.”
스님이 걸어온 길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겸손한 말씀이었지만 투병의 고통과 정진의 세월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필자 또한 사회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의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고 병든 부분을 치료하기 위해 슬로푸드운동을 하게 되었다. 사찰음식과 슬로푸드 운동이 출발하고 또 지향하는 지점이 다르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말씀이었다.
대안 스님이 사찰음식전문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종로 조계사 앞에 사찰음식전문점 ‘발우공양’을 오픈하면서부터다. 당시 종단 차원의 사업을 맡기기 위해 내로라하는 스님들을 물색했지만 모두 사양했다고 한다. “연구직이라면 몰라도 음식점 운영은 무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안 스님은 사찰음식을 대중화시키기 위해서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사찰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운영을 결심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사찰음식을 내놓기 위해 매일 아침 6시에 경동시장에 나가 신선한 식재료를 구해 왔고,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 제철재료를 조달했다. 사찰음식의 전통적인 재료와 조리법을 기본으로 하면서 현대 요리의 메뉴 구성과 담음새를 과감하게 접목시켰다. 스님은 주위로부터 “절에서 언제 그런 음식을 해 먹었나”, “스님이 음식장사를 해도 되나” 하는 말들을 듣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대중을 위한 길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직장인 평균 점심값이 6,000원이랍니다. 그래서 적자 운영을 감수하면서 한 끼 6,000원으로 시작했지요. 마이너스를 계속 안고 갈 수 없어 지금은 8,000원을 받습니다. 점심시간이면 인근의 대기업 사옥이며 크고 작은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이 ‘발우공양’에 와서 줄을 서요. 그 모습을 보면 그동안의 고생을 씻은 듯이 잊곤 합니다. 이제는 불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사찰음식을 ‘내 몸에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사찰음식이 제아무리 좋다 해도 아무도 먹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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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공간의 맥락이 살아있는 사찰음식
대안 스님과 햇녹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 후 나물을 뜯으러 가자고 해서 소쿠리와 호미를 들고 길을 나섰다. 금수암 아래로 3,500평이 차밭, 연밭 등 손수 농사짓는 텃밭이라고 했다. 오가피나무 순을 채취해 소쿠리에 담고 그 옆에 있는 엄나무 순을 뜯으려고 보니 나무순이 너무 세서 적당하지 않았다. 역시 때가 있는 법이다. 이어 제피 잎과 취나물 등을 뜯었다. 생강향이 난다는 생강나무, 아토피에 좋은 진액이 나오는 애기똥풀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저런 지식을 자라나는 아이들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산으로 들로 다니며 어릴 적부터 몸으로 터득했던 것들인데 도시의 아이들에겐 낯선 얘기가 되었다. 
나물을 뜯으면서 대안 스님은 지역에서 난 제철 식재료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땅과 바람, 햇볕의 기운을 다 담고 자란 지역의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은 약이라는 말씀이었다. 슬로푸드운동의 한 갈래인 ‘로컬푸드(local food, 지역의 식재료를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운동)’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대안 스님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도래했던 1,7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역에서 난 제철 재료로 정성들여 만들어졌던 것이 사찰음식이라고 했다. 또한 사찰음식은 서민들이 먹던 음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슬로푸드운동에서 말하는 슬로푸드, 즉 인류가 지향할 음식문화가 사찰음식 속에 들어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은 음식이 지녀야 할 본질을 잃었다. 예전의 음식은 이른바 ‘맥락’을 가지고 있었다. 식재료는 먹는 사람의 인근, 즉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었고 제철에 나온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음식이 온전한 공간적 맥락과 시간적 맥락을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먹을거리의 생산과 유통이 산업화되면서 맥락이 무너진 정체불명의 음식을 먹게 되었다. 또 예전에는 각 가정마다 가정의 음식이 있었고, 가정마다 음식 맛이 있었다. 대부분의 음식이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회사의 이윤을 위해 팔려나가는 시대가 되면서 이렇게 만들어진 인스턴트식품과 패스트푸드가 가정 안팎에서 음식문화의 주류를 형성해왔다.
먹는 사람을 생각해서 만들어지고 차려지던 가정음식이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서, 사찰음식이 현대음식문화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전부터 해왔다. 금수암 장독대에서 대안스님이 정성껏 담근 간장을 맛보며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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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사람을 생각해서
만들어지고 차려지던
가정음식이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서,
사찰음식이 대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전부터 해왔다.
금수암 장독대에서
정성껏 담근 간장을
맛보며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 미래에 인류의 은인으로 대접받을 사람이란
대안 스님이 준비한 사찰음식을 점심으로 먹었는데 음식이 짜지 않았다. 금수암 간장이 짜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밥은 적게 먹고 반찬을 많이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만든다고 한다. 사찰음식은 먹는 사람을 배려하는 음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게 먹어야 하는데, 좀 과식을 했다. 그럼에도 속이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좋은 재료로 먹는 사람을 배려해 만든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헤어지기 전 대안 스님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책 속 글귀를 기록해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20년 만에 다시 읽고 있는데 읽을수록 한 구절 한 구절이 새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스님은 그 중에서도 “인간에게 보다 깨끗하고 건전한 식사만을 하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류의 은인으로 대접받게 될 것이다.”라는 구절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사찰음식전문가인 대안 스님뿐 아니라 슬로푸드운동을 하는 필자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말이었다. 사찰음식과 슬로푸드는 같은 목적지로 가는, 두 갈래 길이었다. 
필자는 그동안 슬로푸드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리는 일에 힘써 왔다. 앞으로는 슬로푸드뿐 아니라 사찰음식의 가치를 알리는 일에 관심을 갖고 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청 금수암은 필자가 사는 경남 창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제 가끔 금수암에 들러 음식이야기도 나누고 사찰음식을 맛보고 해도 실례는 아닐 듯하다. 대안 스님과 두 번 만난 인연, 불교에서 보면 대단한 인연이 아닐까. 대안 스님도 반갑게 맞아주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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