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다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
상태바
간절함이 다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5.27 18: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도순례와 수행의 현장 - 기도성지 3寺 순례

세상에 원하는 것을 갈구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불교가 종교일 수 있는 이유 역시 기도라는 행위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수많은 기도처가 존재하는 이유도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다시 길 위에 섰다. 이번 발걸음은 대표적인 기도처들에 대한 순례이자 기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위함이었다.
 

| 서해를 마주하고 앉은 보문사의 관음보살
첫 순례지로 선택한 곳은 국내 3대 관음성지 중 한 곳이라는 강화도 보문사다. 보문사는 눈썹바위 밑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로 유명한 곳. 석실 법당에 모셔진 22위의 나한상에 얽힌 이야기들도 꽤나 잘 알려져 있다. 입가에 팥죽을 묻힐 정도로 팥죽을 좋아한다는 나한님이 어느 분이신가 둘러봤지만 이미 그 입을 싹 닦아낸 지 오래인 듯했다. 양양 홍련암, 남해 보리암과 함께 국내 3대 관음성지로 알려져 있지만, 나한님들의 가피도 무시 못할 곳이 보문사다.
경내는 태안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로 꽤나 시끌벅적했다. 일주문 너머까지 온산이 울리도록 구성진 노랫가락을 뽑아내는 보살님도 있었다. 하지만 마애불에 오르는 계단에 발을 들이자 이내 고요함이 찾아온다. 420개의 계단이 생각보다 힘겹다. 이 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신심이 차곡차곡 손때처럼 묻어 있을까. 희망과 눈물이 절반씩 섞인 기원들이 보이지 않는 발자국이 되어 한 칸의 계단을 딛고 저 관세음보살의 곁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저기 힘겨운 한 발을 내딛으며 뒷짐 진 손으로 108염주를 돌리는 노보살처럼 말이다.
관세음보살이 마애불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눈썹바위까지 오르니 많은 사람들이 몸을 낮추고 있었다. 쉼 없이 허리를 굽히는 사람들의 이마가 땅에 맞닿을 때쯤 흘러내린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법 빗방울이 굵어지자 절을 올리던 사람들이 몸을 뒤로 무르고 좌복을 챙겼다. 조금 전 힘겹게 계단 위로 몸을 올렸던 노보살에게 다가가 무얼 위해 기도했냐고 물었다. 한동안 미소만 보이다 뒤돌아서서 입을 열었다. 
“기도야 다 똑같지. 너나 나나 똑같은 사람인데 다를 게 뭐가 있겠어요. 그저 내 가족들 건강하게 사는 것하고 하고자 하는 일 원만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거지. 늙은이는 그 이상 바라는 게 없어요.” 
말을 남기고는 뒷짐을 진 예의 그 모습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텅 빈 야외법당을 앞에 두고 저 바위에 앉아 비를 피하고 있는 관세음보살은 끝내 말이 없었다. 비가 잦아질 때쯤 누군가 올라와 좌복이 있던 마른자리를 골라 몸을 웅크린다. 관세음보살은 그 모습에도 아랑곳없이 먼 곳만 바라봤다. 관세음보살의 눈길이 머문 곳에는 서해의 절경이 아련하게 펼쳐져 있었다. 

 
2.png

23.png
 

| 사람들의 아픔을 품어주는 도솔암의 지장보살
고창 선운사의 사하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낮게 깔린 뒤였다. 이번에는 지장기도 도량인 선운산 도솔암으로 향하는 길이다. 도솔암은 매주 토요일에 철야기도를 하고 있다. 지장기도는 지옥의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을 향해 올리는 기도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나름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아픈 상처를 굳이 꺼내어 놓지는 않았다. 말 속에 숨긴 절반의 침묵이 그저 아프게 다가왔다. 
저녁 9시, 기도가 시작됐다. 까만 어둠이 온통 산을 뒤덮었지만, 보름달은 밝았다. 도솔천 내원궁으로 오르는데 그 곁에 마애불이 지키고 섰다. 일자로 꾹 다문 입술은 단호해보였다. 하지만 기도객의 발길을 막아서진 않았다. 좁고 가파른 계단 끝에 오르자 황홀경이 펼쳐진다. 아! 내원궁이 있는 이곳이 진정 도솔천이구나. 내원궁 주변의 산세며 풍광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해도 좋을 듯했다. 
그 광경에 “다른 기도처들과 달리 이곳은 기도객의 마음을 알아주고 품어주는 곳”이라던 말을 조금은 실감할 수 있었다. 모든 중생을 품어주려는 지장보살이 이곳에 자리를 틀고 앉은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법당 안에서는 천수경이 흘러나온다. 본격적인 지장기도를 들어가기에 앞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는 과정이다. 독경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곧 이어 지장정근이 시작됐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음률이 느리고 부드럽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선 것처럼 애절함이 녹아있는 경상도와 달리 전라도 지역의 염불은 기도객의 마음을 둥글게 보듬어준다. 그 소리가 어둠 너머 완곡한 능선을 닮았다. 좁은 법당 안을 채운 사람들은 꼿꼿했다. 무너지지 않는 허리와 흔들림 없이 입을 모으는 기도소리에는 절절함이 묻어났다. 
도솔암에서는 이런 식으로 하루에 두 시간씩 8번 기도를 이어가는 8분 정근을 매일 하고 있었다. 하루에 기도 시간만 16시간이다. 철야기도까지 있는 날이면 사실상 24시간 내내 기도가 이어진다. 왜 기도를 하느냐는 물음이 떠올랐다. 그 질문에 강수자(55) 씨는 이렇게 답했다.
“기도하는 삶이 불자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인연을 맺은 주변까지 함께 바꿔가는 힘이니까요. 또 마음공부를 하는 힘을 길러줘요. 기도를 시작하면서부터 이론으로 알던 것들이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예정된 철야기도 시간이 끝나고 새벽예불이 시작됐다. 예불이 끝나면 또 다시 기도의 시간이다. 그 사이 도솔암에 푸른 아침이 밝았다. 여명에 비친 선운산은 더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