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힘들 때, 수행하기 딱 좋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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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들 때, 수행하기 딱 좋은 때!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5.2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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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순례와 수행의 현장 - 활발발한 수행의 현장들

철학자 강신주의 ‘돌직구’가 화제다. 삶이 힘든 사람들이 상담을 요청해올 때마다 그는 예외 없이 그들을 번지점프대에 세운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주춤대다 물러나거나, 뛰어내려 온몸으로 경험하거나. 이것은 삶이 끝없이 우리를 고통 앞에 세우는 까닭이기도 하다. 세 가지 수행법의 현장, 수행이라는 번지점프대에서 자신을 던져 행복을 찾는 사람들과 그들을 이끄는 스승을 만났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수행하라.

| 선사, 직설화법으로 부처를 깨우다
공주 학림사 오등선원은 용맹정진 참선도량을 기치로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수행하는 곳이다. 계룡산 검푸른 침엽수림이 당당한 위용으로 장엄하고 있는 오등선원에서 조실 대원 스님(학산대원 대종사)을 만나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를 묻자 “수행은 필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수행을 먼저 대두하는 것이 아니지! 왜냐, 바로 듣고, 바로 보고, 바로 알아버리면 수행이 필요 없거든. 본성자리에서는 다 부처인데 말이야. 수행을 해가지고, 거기서 얻어지는 게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없어지는 것이야. 얻었기 때문에. 그러니 얻을 것이 없는 영원한 행복의 본체를 바로 볼 뿐이지. 이걸 모르니까 골똘히 탐구해서 맛보라는 것이고.”
대원 스님의 직설화법은 부처님께서 한 마디 말씀만으로 법을 청하는 이를 그 즉시 아라한이 되게 하셨던 방식 그대로다. 선사의 직설은 근기의 높고 낮음을 떠나 상대를 부처로 보기에 가능한 자비의 대화법이었고, 잠자는 부처를 깨우는 지엄한 경책이었다. 다시 질문했다. “얻어지지 않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알려면 알려는 마음이 있어야지! 알고 싶어 하게 만드는 것이야. 존재는 완벽하지 못해서 소망을 가지게끔 되어 있어.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고, 승진도 해야 하고. 그런데 바라는 것이 뜻대로 되던가? 안 되지. 왜 안 되는지 알아요? (잠시 침묵) ‘나’를 바로 알면 다 돼! 만 가지 자물통이 열리거든.”
사는 게 뜻대로 되지 않으니 괴롭고 힘이 들게 마련이고 ‘어떻게 이 고통에서 벗어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샘솟아 지극한 행복을 찾아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뜻이다. 고통과 행복이 둘이 아닌 셈이다. 스님은 이것을 “시커먼 진흙에서 해가 뜨는 것”이라고 했다. 
오등선원에서는 매주 토요일 철야참선법회가 열린다. 대원 스님이 직접 법문과 경책을 맡고,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스님과 불자들이 한 공간에서 정진한다. 연중 빠짐없이 문을 열며 하안거, 동안거, 춘계안거, 추계안거 기간 중 각각 한 번씩 일주일 동안 하루 21시간 눕지 않고 화두를 드는 용맹정진을 실시하고 있다(음력 3.23~29 / 7.4~7.10 / 9.23~9.29 / 12.2~12.8). 스님들은 연중 1회 ‘21일 용맹정진’을 단행한다. 전국적으로 드문 사례다. 
어둑한 선방에는 70여 명의 수행자들이 좌정하고 있었다. 화두일념의 서늘한 기운이 천장을 찌를 듯했다. 과연 용맹정진 참선도량다운 기세다. 어느덧 밤이 깊었다. 길을 되짚어 계룡산을 내려오는데 ‘진흙에서 뜨는 해’가 오등선원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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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없이 달리다 멈추고 쉴 때의 그 즐거움
제따와나.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물며 법을 설한 기원정사를 일컫는 팔리어다. 제따와나선원은 양평의 한적한 교외에 소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학승의 풍모와 수행자의 위의를 동시에 지닌 선원장 일묵 스님은 “수행은 즐거움을 계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감각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행복과 욕망에서 벗어나는 행복입니다. 원하는 것을 이룸으로써 얻는 행복은 감각적 욕망의 범주인데, 이때 행복은 짧고 괴로움은 깁니다. 달콤하지만 얻으면 사라질까 두렵고, 얻지 못하면 갈구하지요. 반대로 욕망을 포기해서 얻는 즐거움이 있는데, 이 즐거움을 계발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달리기와 비슷해요. 정신없이 달리다가 잠시 멈추고 쉬면 살 것 같지요. 이것이 욕망을 쉬는 즐거움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따와나선원의 한 안내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앞만 보고 달려가십니까? 그렇게 달려온 지금, 행복하십니까?’ 가져도 가져도 만족할 수 없고, 달려도 달려도 가 닿을 수 없는 허기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라는 말이다. 제따와나선원은 ‘쉼’이라는 단어에 꼭 어울리게 조용하고 단정한 가정집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 제따와나선원에서 수행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것은 팔정도八正道다. 일묵 스님은 그 근거로 『열반경』을 들었다. 마지막 출가제자인 수밧다가 “여러 유파의 지도자들이 많은데 그들 가운데 깨달은 자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부처님은 “어떤 가르침이든 그 안에 팔정도가 들어 있다면 깨달은 사문이 나온다.”고 답하신 대목이 그것이다.
“감각적 욕망을 누리되 바르게 누리는 가르침이 팔정도의 정어·정업·정명입니다. 감각적 욕망의 한계 느끼고 생로병사를 벗어나려면 정견·정사유를 닦아야 하고 이것이 위빠사나입니다. 마음을 고요하고 또렷하게 해 깊은 수행으로 이끄는 가르침은 정정진·정념·정정, 즉 사마타 수행입니다. 팔정도 수행법은 계율을 바탕으로 사마타의 삼매와 위빠사나의 알아차림이 조화를 이루는 겁니다.”
제따와나선원에는 매월 첫째 주와 셋째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집중과 점검의 기회를 갖는 ‘주말 팔정도 집중수행’을 열고 있다. 이밖에도 원하는 기간 동안 선원에 머물면서 수행하는 자율 집중수행, 3주 이상의 단기출가에 참여가 가능하다. 인원은 집중수행이 15명, 단기출가는 4명까지다. 크지 않은 규모이나 매일 스님과의 수행점검이 이루어져 밀도 있는 수행을 경험할 수 있다.
일묵 스님이 출가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 가운데 하나가 “스님, 무슨 재미로 사세요?”라는데, 주말 팔정도 집중수행의 현장에는 진정한 행복을 찾아 수행하는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이 있었다. 맑고 밝은 얼굴에 표정은 평온했다. 정신없이 달리다 멈추고 쉴 때의 그 즐거움이었다. 좌선삼매에 빠진 제따와나선원의 수행자들과 잠시 함께한 것만으로도 더불어 평온해짐을 느끼며 다시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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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과 희열의 수행법을 발명하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수행현장 법왕정사는 대구 시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다른 수행현장에선 접해본 적 없는 무엇이 보는 이를 압도하고 있었다. 바로 ‘신명’이었다.
“수행은 희열로 하는 거예요. 거기엔 번뇌가 끼어들 틈이 없어. 신나게 하는 거야!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눈까지 웃는 얼굴로 좌선을 하면 그것이 밝음이야. 가슴 구부러지고 얼굴 찌그러지면 무조건 수행이 아니야. 입술꼬리 풀렸어, 틀림없이 딴생각 하고 있어.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가장 쉬운 수행은 자기 얼굴에 집중해서 부처님의 미소를 짓는 것이야. 이것이 굳어지면 저절로 삼매가 오거든.”
지켜볼수록 분위기 뿐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가 독특했다. 법왕정사만의 독송집을 한 목소리로 읽는 예불예경, 30분간의 절 수행, “부처님 크신 은혜 고맙습니다!”라고 외치는 염불수행, 각기 다른 내용으로 진행하는 세 차례의 5분 명상. 프로그램 구석구석, 어디서도 볼 수 없던 독창성과 청견 스님의 대찬 기운이 꽉 들어차 있었다. 
“잘하려고 하면 긴장하고, 잘하려는 그만큼 잘 안되잖아. 마음이 시끄러워 다스리려고 애쓰면 안되는 게 100프로야. 배를 다스려야 해. 이게 호흡이야. 마음이 거칠어지면 바로 호흡이 거칠어져. 인류는 자세불량으로 숨을 거꾸로 쉬어. 자율신경이 무너지면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절이야. 수행은 무엇이다? 의식과 무의식을 초월해서 부처님 마음으로 직격탄으로 들어가는 거야. 열심 채널, 불편 채널에 맞추면 수행 아냐. 부처님 마음에 채널 고정!”
법왕정사에서는 매주 또는 매월 108배· 1,080배·3,000배·10,000배 수행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2시간에 걸친 수행이 이루어진다. 개별적으로 기한을 정해 놓고 인근에 숙소를 구해 출퇴근하며 집중수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땀 흘리고 절하며, 두 손 모아 “나는 본래 부처인 나다!”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의 얼굴에 신명과 희열이 배어나왔다. 번뇌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숲 깊은 산중, 한적한 교외, 도심빌딩. 세 곳의 수행현장 순례를 모두 마무리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등 뒤에서 청견 스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어려움 만난 것 절대 나쁜 조건 아니지. 괴로움 삼매에 빠져 봐, 발심이 절로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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