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태어난 조각가가 있다. 발부리에 걸리는 돌이 기왓장이고 토기 파편으로 비석치기를 할 정도로 문화재가 지천에 널린 동네가 경주다. 그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동네 놀이터는 황룡사 금당자리였고, 남산에서는 눈만 돌리면 마애불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유년기를 보낸 그가 불상 조각을 업으로 삼게 됐다는 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를 일이다. 오채현(52) 작가는 그렇게 숨 쉬듯 자연스럽게 불상 조각의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고 했다.
| 천진난만한 불상, 익살맞은 호랑이
흔히 작가의 작업실을 떠올릴 때는 무언가 그럴 듯한 공간을 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머릿속에 그렸던 공간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종종 있다. 오채현 작가의 작업실이 그랬다. 그의 작업실은 파주의 석재회사 한편에 마련돼 있었다. ‘오채현’이라는 이름 석 자는 이미 불상조각가로, 일반에는 ‘호랑이 조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의 작업 공간 속에는 전업 작가의 어려움이 녹아 있었다.
“이 일은 시공간의 제약이 많아요. 작업할 공간을 하나 확보하는 데에도 최소한 500평(1,652㎡) 정도가 필요해요. 석재들을 깔아두고 그 중에서 골라 써야 하니까요. 그나마 모든 작업을 다 여기서 하는 것도 아니에요. 석재를 구하고 나면 겉돌을 치는 과정은 대구에서 해요. 공간이 넓은 곳에서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나면 이곳으로 들고 와서 본격적인 작업을 하는 거죠. 돌을 가공할 때도 전동 톱을 써야 하는데 소음이 심해서 야간에는 할 수가 없어요. 당연히 서울 시내에서는 작업이 불가능하죠. 세상이 발전할수록 도시는 커지고 저 같은 조각가들은 점점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오채현 작가는 천진난만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이 가득한 작품들을 쏟아 놓는다. 오 작가의 작품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굳이 미술관에 가지 않고도 그의 작품이 보고 싶다면 서울 명륜동의 대학로에 나가면 된다. 만남의 장소로 널리 알려진 대학로 KFC 바로 앞에 장난기 어린 호랑이 한 마리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이 녀석을 보고 있자면 언제 무슨 장난을 칠지 알 수가 없다. 그만큼 짓궂은 표정이다. 21세기 사찰 불사의 모범을 보여준 상도선원에도 오 씨의 작품이 있다. 어린이법당을 지키고 있는 나한상이 그의 작품들이다. 나한상들은 더없이 친근하고 재치가 넘친다. 어떤 나한은 손가락을 들어 묵언 중임을 알리고 있고, 어떤 나한은 책을 읽는 중이다. 그 옆에는 배가 고파 먹을 것을 들고 있는 나한도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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