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품는 따스한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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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품는 따스한 기운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4.0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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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갑사 <삼신불괘불탱>

(1650)에 완성되었으며 17세기를 대표하는 수작. 삼신불(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응신 석가모니불)이 나란히 앉아 계시다. 크기 12.47 x 9.48m.

공주 갑사의 초입에 들어서는데 싸락눈이 천지에 흩날린다. 고운 입자의 눈발이 일제히 거꾸로 하늘로 오르기도 하고 공중에 머무르기도 하며 바람따라 군무를 춘다. 도인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계룡산. 입구부터 만나게 되는 노송과 느티나무 고목들이 그윽한 신비를 품고 있다. 덜 녹은 눈으로 여기저기 덮인 땅인데도 밟히는 흙은 따스했고, 차곡차곡 쌓인 낮은 돌담들은 정겨웠다. 계곡의 바위와 주변 나무들은 겨울인데도 융단같은 이끼로 덮여 있다. 습윤한 골짜기 사이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기운 따라 용이라도 한 마리 승천할 기운이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아보였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돌아볼수록, 아득한 봄날 같은 부드러운 따스함 속에, 천지를 품어내는 호연지기가 서려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천하를 발밑에 두고 군림하겠다는 권위적 기상이 아니다. 넓고 큰 기개는 여느 호걸 못지않으나 그 표현에 있어 밝고 따듯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갑사가 소장하고 있는 대표 유물들이 바로 이러한 특징의 기운을 품었다는 것이다. 철 당간, 대웅전의 소조 삼세불, 금고저(쇠북걸이), 삼신불괘불탱 등이 그러하다.

| 장대함 속에 품은 온화한 미소

사찰 입구의 철 당간幢竿은 15미터의 어마어마한 높이이다. 연결된 철통이 현재 24개인데 본래 28개였다 하니, 지금보다 3~4미터는 더 높았을 것이다. 육중한 용의 몸통 같은 철 기둥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았고, 그 꼭대기에 화려한 당번이 걸려 창공에 드높이 펄럭였을 것이다. 대웅전 안 한 켠에는 청동 쇠북(금고)이 달려있는 나무로 조각된 조형물이 있는데, 얼핏 보기에 업경대 같아 보인다. 이 조형물은 국내에서 가장 큰 초대형 쇠북걸이로 유명하다.(도판 03) 거대한 부채꼴 모양의 연꽃잎 양쪽으로 용이 솟아 나오고, 이 두 마리 용은 기염을 토하며 하나의 붉은 여의주를 동시에 잡고 있다.(도판 04) 매달린 쇠북은 용이 품은 대형 여의주 같다. 그런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를 받치고 있는 신비스런 푸른 동물이 고개를 빼꼼 내어 나를 향해 메-롱 혓바닥을 내밀고 있다. 먼저 장대한 규모와 화려함에 매혹되고, 다음엔 그 속에 스민 해학에 웃는다. 돌아나오며 진해당 주련의 글귀를 마주한다.

팔만 사천 경은 마음에서 나온다.
백억의 하늘과 땅을 발아래 품었다.
사라쌍수에 잠긴 광채가 바로 적멸이요
다시 금강 사리가 광명을 발한다.

갑사에는 위에서 언급한 특징인 장대함과 따스함을 함께 품은 국보 괘불탱화가 있다. 국내에 그리 많지 않은 17세기의 귀중 작품이다. 언제 실제로 펼친 것을 볼 수 있을까. 7년 전 가을 개산대제 때 100년 만에 처음 펼쳐서 ‘영규 대사 추모 괘불재’를 거행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도통 계획이 없다 하신다. 영규 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병을 일으킨 인물이다. 공주가 고향인 그는 청주성이 왜적에게 점령되었다는 소식에, 이미 관군이 모두 달아난 그곳에 승병을 이끌고 가서 탈환에 성공한다. 영규 대사와 승군 700여 명은 이어 금산전투에도 뛰어들었으나, 무려 20배가 넘는 수의 왜군에 대적해 사력을 다해 싸운 후,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몰살된다. 한성을 버리고 피난 갔던 선조는 청주성 승전 소식에 영규 대사에게 당상 벼슬과 관복을 내렸으나, 그것이 미처 도착하기도 전 대사는 전사한다. 갑사는 승병 궐기의 최초 도화선이었다. 나라를 지키다 숨진 고독한 전사들의 성지인 것이다. 그 후, 정유재란 때 사찰은 전체가 전소되어 버리는 비운을 맞는다. 이러한 역사의 아픔을 딛고 선조37년(1604)부터 갑사는 다시 재건되기 시작했다. 갑사 내 표충원에 모셔진 영규 대사의 영정을 보니 기골이 참으로 장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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