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과 스노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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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학과 스노우맨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2.10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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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도량에도 겨울방학이 찾아왔다. 학인들은 자기 절로 돌아가는 게 그렇게도 좋은지 하루 종일 싱글벙글한다. 학기 내내 도량을 가득 채웠던 학인들의 독경소리가 빠져나간 자리가 허전하다. 겨울은 고요하게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준다. 세상이 다복하기를 바라며 기원해본다.

 
| 버리는 연습

겨울방학 하루 전날. 온 도량이 부산하다. 학인들은 대청소하며 도량 구석구석 깨끗하게 하고, 개인 다락장과 정통(목욕탕)장에 있는 옷가지며 책, 그리고 사용하는 물품들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여름옷과 춘추옷, 공양 받은 물품들, 지금 당장 쓰지 않는 물건들은 잘 싸서 부칠 것은 부치고, 필요치 않은 물건들은 버리거나 나누어 준다. 파제간탐破除慳貪, 자기 것을 아끼고[慳] 다른 사람의 것을 욕심내는 마음[貪]을 제거하고 버리는 것이다. 혼자 살아도 있을 것은 다 있어야 된다. 그러나 최소한의 꼭 필요한 것만 빼고는 쌓아두지 않는다. 난 그것이 수행자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걸망 하나 메면 그뿐! 잘 안되기는 하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면 마음도 가벼워지고 몸도 개운해진다. 나도 습관처럼 철마다 버리는 연습을 한다. 그래도 쌓이는 물건들이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늘어나고 무거워진다. 나이 들수록 가벼워지고 작아지기를!

드디어 방학 준비 완료. 원주실 뒷뜰에는 택배로 부칠 바나나 박스와 과일 상자들이 포장되어 차곡차곡 쌓여있다. 짐 싸고 소포 부치는 데는 스님들이 제일인 것 같다. 요즈음이야 모두 택배 박스로 부치니 꼼꼼하고 야무지게 짐을 포장할 일이 없어졌지만 얼마 전만 해도 짐 싸고 포장하는 데는 스님들이 최고였다. 특히 학인스님들이나 선방스님들은 걸망 살림, 박스 살림하며 철철이 짐을 쌌다 풀었다 하기 때문이다.

방학하기 전날 밤 대중들이 모여 방학공사를 했다. 입승스님이 방학기간과 남는 인원수, 그리고 개학날 저녁공양시간 전까지 귀사하여야 하고, 어길 때는 학칙 몇 조에 의해 벌칙을 받는다는 내용과 전달사항까지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이어지는 학장스님의 훈시사항.

“‘우리 상좌 강원 보냈더니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말 들을 수 있도록 은사스님 잘 도와드리고 학비도 많이 타오고, 잘 보내다 와요. 방학이라 해서 책 아주 놓아버리지 말고…. 알았나요?” “네.” 초등학생들처럼 큰 방이 떠나가라 우렁차게 대답한다. 오늘 밤은 아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난 은사스님이 여기 계시니 달리 갈 곳이 없다.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어디든 갈 수 있다. 매인 곳이 없으니 자유롭다. 규칙적인 대중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각자의 절에서 지내는 것이 학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자유이리라. 물론 다른 스님들과 함께 사는 또 다른 대중사찰이야 예외겠지만. 은사스님이 계시는 각자의 절에 가면 또 다를 것이다. 방학 때마다 학인들은 각자의 절로 돌아간다. 아직 사미니 학인이기 때문에 여기보다 더 바쁘게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생활이라는 틀과 구속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으로 마냥 즐겁다. 너무 자유로우면 게을러서 방종하게 되고, 구속하면 긴장하게 되고 불안하다. 강원생활에서 방학은 자유와 구속 사이에 적당한 여유를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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