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세계 최초로 여성을 받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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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세계 최초로 여성을 받아들이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2.10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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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여성은 해와 달처럼 각기 다른 고유한 기능 속에서 인류의 전체를 구성한다. 다름 속에 내재한 조화의 완성, 이것이 바로 남성과 여성의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이것을 자각하는 데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류의 문명발달이란 필연적으로 전쟁과 계급을 수반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남성주의사회가 만들어지게 되며 여성은 소외된다. 덕분에 문명이 오래된 지역일수록 여성차별은 보다 심하고 가혹한 양상을 띤다.

 
| 인류 최초의 양성평등

중국문명의 유교는 촌수를 바탕으로 주변인을 대우한다. 그러므로 1촌인 부자간의 덕목인 ‘효’와 2촌인 형제간의 관계인 ‘제悌’가 그 근간이 된다. 그러나 부인은 무촌으로, 특별히 정해진 형식이 없다. 덕분에 첩을 두거나 불합리한 이유로 내쳐도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동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여호와는, 남성인 아담은 신의 의지로 만들지만 여성인 이브는 아담의 일부인 갈비뼈로 만든다. 이로 인하여 서구에서는 오늘날까지, 결혼한 여성은 남편의 성씨를 따르는 종속적 구조가 유지된다.

문명이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인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붓다 당시 집안에 남성구성원이 없고 여성만이 존재할 경우, 그 집의 가산을 적몰하는 법이 공공연히 시행되고는 했다. 즉, 여성은 독립된 인간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 힌두교에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티sati라고 해서, 남편이 죽은 후 화장하는 불길 속으로 아내가 뛰어 들어가 자살하는 것을 권장하며 이를 미덕으로 여기곤 했다. 이는 조선시대에 수절과 자결을 권장했던 것과 유사한 가치라고 하겠다.

불교는 세계의 종교 중 가장 오래된 종교이다. 그러나 붓다의 창조적인 정신은 가장 현대적인 새로움을 내포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 단적인 예가 여성을 출가수행자로 받아들여 독립적인 인격으로 대우하는 사건이다.

여성의 출가는 붓다의 부친인 정반왕의 사후에 이루어진다. 정반왕의 직계인 붓다와 이복동생 난타, 그리고 붓다의 아들인 라후라는 모두 출가한다. 그러므로 정반왕의 임종은 붓다의 이모이자 양모인 대애도와 부인 야소다라에게 더 이상 의존할 석가족 남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붓다를 따라서 출가한 다수의 석가족 남성들로 인해서 의지할 대상이 없던 석가족 여성들이, 대애도를 필두로 붓다에게 출가를 요청하게 된다. 즉, 불교의 여성출가에는 그들의 바람도 있었지만 당시의 문화배경적인 측면 역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당시 석가족 여성들의 출가에 원치 않는 출가자들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또 다른 측면에서의 붓다의 배려였다는 점에서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후 석가족의 역사는, 강대한 코살라국 유리왕의 원한에 사무친 무자비한 대량학살의 상황을 맞게 된다. 당시는 국력의 정도로 보아 석가족이 제 아무리 단합한다고 해도 코살라군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치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과도 같은 양상이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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