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방심放心 후 잃어버린 것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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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방심放心 후 잃어버린 것을 찾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2.0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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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서희원의 산청 대원사 템플스테이

스마트한 세상이다. 스마트폰의 앱으로 지하철 시간을 확인하고, 지리산 대원사로 내려가는 시외버스 시간과의 연결을 고려한 동선을 짜고, 불필요한 시간의 낭비 따위는 없다는 듯이 길을 걸었다. 걷고 있자니 세상이 잘 만들어진 레고 모형처럼 아귀가 잘 맞은 느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스마트해졌다. 움직임이 잽싸고, 촌스럽지 않게 맵시 있게 행동하고, 무엇이든 능숙하게 쓱쓱 처리하고. 이러한 삶의 자세가 영리하다고 상찬 받는 세상이 되었다. 레고 모형에 꽂힐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해 떨어져 나온 조각처럼 잉여인간 취급을 받는 것도 싫고, 그것이 단순한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갈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되어버린 세상이라 나도 스마트폰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매일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매만지는 것보다 더 자주 화면의 액정을 만지며 메일을 통해 업무를 확인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100%라고 적힌 스마트폰의 전원 표시 수치가 눈에 들어와야 아침의 활기를 느끼는 그런 인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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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대 바위 위에서 내려다본 대원사 전경. 지리산의 절경과 잘 어우러진 대원사는 언양 석남사, 수덕사 견성암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손꼽힌다.

 
| 그렇게 가벼운 몸이 되어

지리산 대원사로 템플스테이를 간다고 했을 때 난감했던 것은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버스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사실 나는 버스 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딱 질색이다. 어렸을 때는 지독한 차멀미를 고쳐지지 않는 버릇처럼 가지고 있어서 주머니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상비약처럼 넣고 다녔다. 지금은 예전처럼 심하게 멀미를 앓진 않지만 금방 속이 울렁거려서 버스 안에서는 책을 읽지도, 영화를 보지도 못한다. 어떤 때는 수신된 문자에 답장을 보내다가도 멀미를 할 때가 있다. 버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하나 잠자는 일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우등버스의 좌석은 편안했고, 버스 안의 승객들은 조용했지만 잠을 잘 수 없었다.

언젠가는 기억에서 잊혀서 그렇고 그런 날이 될 것이기에 날짜를 밝히는 편이 좋겠다. 내가 대원사행 버스를 탄 2013년 3월 9일 토요일은 흔히 말하는 꽃샘추위도, 아직 지나가지 않은 겨울의 흔적도, 좀처럼 찾을 수 없는 날이었다. 아니 준비해 간 겨울옷을 하나하나 벗고 나중에는 반팔 차림으로 돌아다녀도 전혀 추운 것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날은 기상청에서 기온을 관측하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더운 3월 기온이었다. 서울은 23.8도였고, 전주는 무려 28.2도였다. 비교하자면 3월이라기보다는 6월 하순의 초여름 날씨에 가까웠다. 100년 동안 100번 돌아왔던 3월 중 가장 따뜻한 날이 2013년 3월 9일이었다. 도시와는 사뭇 다를 지리산의 추위를 예상하고 입었던 내의는 땀에 젖어 잠수슈트처럼 몸에 달라붙어 숙면으로 걸어가는 내 발걸음을 끊임없이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버스 안에서 나는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되는가 하는 마음에 조바심이 일었고, 이런 상황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났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달린 후에야 마음은 조금씩 상황과 타협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갈색의 산과 들에 별처럼 반짝이는 초록의 빛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디는 눈부신 초록에 묻혀 겨울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름다움은 우리 주변에 항상 있지만, 아무런 정념도 아무런 상념도 없는 눈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청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릴 때 내 손에 들린 것은 빈 물병과 두꺼운 겨울옷, 그리고 조바심과 짜증이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가방에 챙길 것은 챙기고, 그렇게 가벼운 몸이 되어 산을 올라 대원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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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고 또 쉬며 조바심을 내려놓다

지리산은 품이 넓은 산이다. 대원사 근처에는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숯을 만들며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들이 자주 나온다고 해서 맹수골짜기라고 부르던 것이 사투리와 구음으로 둥글게 마모되어 지금의 맹세이골이란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지리산은 동물과 식물, 그리고 사람도 넉넉하게 품고 있지만 무엇보다 물이 많다. 겨우내 산이 품고 있던 물이 봄이 되니 사방으로 흘러 내려간다.

계곡을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를 경내의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있는 대원사는 지리산 천왕봉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해인사의 말사이다. 특히 대원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굳이 비유하자면 불교의 엄격한 율법보다는 부처님의 따사로운 마음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절이다. 그런 마음이 담겨서일까. 대원사의 정경은 사람을 압도하기보다는 안아주고, 정신을 날카롭게 만들기보다는 그 테두리를 오래 매만져 둥글게 만드는 편안함을 주었다. 엄격한 규율 안에서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는 행자님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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