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을 전하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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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을 전하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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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0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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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진관사 사찰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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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진리의 음식을 베풀다

진부한 질문이지만 먼저 진관사가 사찰음식으로 유명해진 연유를 물었다. 진관사가 지닌 사찰음식의 내력을 가장 빨리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섞인 호기심에서였다. 계호 스님은 진관사가 조선 초에 수륙사水陸寺로 지정된 것을 첫 번째 이유로 들었다. 수륙사는 말 그대로 국행수륙대재를 설행設行하는 사찰을 말한다. 수륙대재는 앞에 국행國行이란 낱말이 붙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국가에서 시행하는 공식의례이다. 최초로 행해진 것은 중국 양나라 무제 때로, 이후 당・송 시대에 널리 성행하였고 우리나라는 고려 광종 때 최초로 열렸다고 전한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시대에는 국가의례로 성대하게 치러졌고,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시대에도 중종연간에 폐지되기 전까지 꾸준히 국가의례로 시행되어 왔다. 진관사를 비롯해 견암사, 석왕사, 관음굴 등 여러 사찰이 수륙사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면 국행수륙대재와 사찰음식은 무슨 관계일까? 수륙대재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의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시식施食’이다. 시식은 말 그대로 물속과 땅 위에 떠도는 모든 유주무주有住無住의 굶주린 고혼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것인데 여기에서 음식은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진리의 음식, 곧 법식法食을 말한다. 그러나 법식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범부중생들에게는 실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음식이 필요하였고, 불단에 올리는 음식이나 스님들이 드시는 공양이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수륙대재는 국가의례이므로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동참대중들이 상당했다. 이들이 먹는 음식은 불교적 가치에 부합해야 했기에 수륙대재를 맡았던 진관사에는 보다 깊은 사찰음식의 내림과 전통이 있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진관사에서는 수륙대재를 지낼 때 오랜 전통에 근거해 두부탕과 찐 쌀을 진설하고, 재를 지내고 난 후 수륙과라 하는 약과를 주지스님이 직접 대중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한다. 진관사에는 600여 년의 수륙사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진관사와 인연 깊은 스님들

근래에 진관사가 사찰음식의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계호 스님의 은사이신 진관 스님의 노력과 공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진관사를 20여 년에 걸친 불사를 통해 오늘날과 같은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한 분이 바로 진관 스님이다. 계호 스님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진관 스님은 사찰음식의 숨은 대가이기도 하다. 항상 소식하고 맑은 음식을 드셨던 스님은 도량이 더러우면 누구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청소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 공양주 소임을 맡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공양간과 부뚜막 청소였을 정도로 청결을 강조했단다. 사찰음식의 기본 덕목인 삼덕(청정, 유연, 여법)의 으뜸이 청정임을 이미 아셨던 것이리라.

또한 진관 스님은 ‘내호조왕內護竈王 외호산신外護山神’이라고 하여 조왕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매년 섣달그믐에 조왕불공을 지내는 것이 진관사의 전통이 되었다. 그리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칙사 대접하듯이 누구든지 잘 먹여서 보낼 것을 원칙으로 삼으셨단다. 70년대 종단의 대소사에는 으레 진관사에서 음식 장만하는 것이 상례였다고 하니 오늘날 진관사의 명성은 이렇게 쌓인 공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은사스님으로부터 전해진 가풍이 지금은 계호 스님으로 이어져 진관사의 전통이 되었는데, 지금도 진관사는 밥이나 떡을 지을 때 신묘장구대다라니를 30번 염송하면서 만든다고 한다.

은사스님으로부터 내림을 이은 계호 스님의 내공도 만만치가 않다. 1968년에 탄허 스님과의 인연으로 진관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운문사 강원에 있을 때에도 음식 관련 소임을 맡았고, 당시 학장인 명성 스님이 항상 음식을 관장하게 했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남다른 비범함이 있었다고 한다. 은사스님 이야기에는 목소리가 높던 스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는 말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법해 스님이 거들었다. 주지 스님이 특히 잘 만드는 음식이 있는데 직접 반죽하고 콩물을 낸 서리태콩국수가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귀띔이다. 더불어 사찰음식이란 이름조차 생소했던 시절인 1991년부터 대구에서 사찰음식 강의를 했었다는 전력(?)도 들추었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진관사와 인연이 깊었던 스님들로 이어졌다. 일찍이 음식 맛이 좋은 곳으로 이름 높았던 진관사인지라 당대의 큰스님들이 두루 다녀가셨는데, 특히 밀접한 인연을 맺었던 분이 탄허 스님이다. 대강백이자 도인으로 이름 높았던 탄허 스님은 소식을 하셨고 1식 3찬에 냉이와 쑥국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위가 안 좋으셨던 스님을 위해 당시 대중들이 진관사 경내 씀바귀를 모두 캐어다 나물무침을 해드렸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평생 이불을 깔고 눕는 법이 없었던 춘성 스님은 팥죽과 국수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생식에 무염식을 한 성철 스님이 취나물을 좋아하셨다는 이야기, 두부조림과 산초장아찌를 좋아한 향곡 스님, 순두부를 자주 찾으셨던 월산 스님, 전통간장을 선호하고 왜간장과 참기름을 피하셨던 관응 스님, 낮잠과 시자 그리고 진밥이 없어 삼무三無스님이라 했던 영암 스님은 고두밥을 좋아했다는이야기 등 진관사와 인연 있는 스님들을 거명하다보니 조계종 근현대사가 그대로 옮겨올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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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주지 계호 스님의 은사인 진관 스님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칙사 대접하듯이 잘 먹여 보낼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 가풍은 계호 스님으로 이어져 진관사의 전통이 되었다. 지금도 진관사는 밥이나 떡을 지을 때 신묘장구대다라니를 30번 염송하면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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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매달려 허덕이지 말라. 미래를 앞서 꿈꾸지 말라.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집중하라.” 계호 스님이 직접 쓴 글이다. 밥이나 옷감, 집을 굳이 ‘짓는다’로 표현했던 우리 조상님들의 마음이 진관사 공양간에 있었다.

 
|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 음식

진관사의 대표적인 음식을 물었다. 두 분 스님이 번갈아가면서 음식을 열거하는데 먼저 두부를 손에 꼽았다. 수륙사와 조포사(두부를 만드는 절)의 내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이 지은 『필원잡기筆苑雜記』에 보면 세조의 신하였던 홍일동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공이 일찍이 진관사에서 놀 때, 떡 한 그릇・국수 세 주발・밥 세 그릇・두부국 아홉 그릇을 먹었고…”라고 전하고 있는데 진관사의 두부가 유명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지금도 발우공양을 하면 반드시 두부장아찌를 내는 것이 진관사의 전통이라고 한다.

다음으로는 진관사만의 깊은 맛이 담긴 된장과 청국장, 그리고 냉면과 백김치를 들었다. 냉면이 별미인데 배와 잣을 갈아서 국물을 내기 때문에 맛이 아주 독특하다고 한다. 백김치를 담글 때도 배추를 절인 물에 무, 다시마, 표고버섯을 섞어서 간을 하고 무, 밤, 석이버섯, 청갓으로 속을 만든다고 하니 듣기만 하는데도 입에 침이 고인다. 이 외에도 맑은장국수, 오이물김치 등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진관사에는 국행수륙대재 등 크고 작은 사찰음식 행사를 담당하고 사찰음식을 대중의 실생활에 널리 펴기 위해 2007년에 설립된 산사음식연구소가 있다. 정기 강좌에는 지금까지 배출한 수강생이 60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대담을 마치고돌아 나오는데 문득 벽에 있는 진관사 달력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과거에 매달려 허덕이지 말라.
미래를 앞서 꿈꾸지 말라.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집중하라.
 
계호 스님이 직접 쓴 글이라고 한다. 짧은 글이지만 진관사의 손맛과 전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짐작케 하는 것 같았다. 밥이나 옷감, 집을 굳이 ‘짓는다’로 표현했던 우리 조상님들의 마음이 진관사 공양간에 있었다.
 
 
진관사의 큰스님 공양 상차림

송이밥과 호박찜, 두부조림으로 정갈하게 차려낸 큰스님 공양상에는 진관사만의 특별한 비법이 숨어있다. 이 음식을 잡수실 분만을 생각하는 지극한 정성과 재료의 생명력을 북돋워 맛을 살리는 정진의 힘이다. 감사의 계절 가을, 큰스님 공양 상차림으로 가족을 위한 밥상을 차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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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밥

- 쌀 3컵

- 물 3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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