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선불교 100년 : 아, 1912년! 그리고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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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선불교 100년 : 아, 1912년! 그리고 100년
  • 불광출판사
  • 승인 2012.03.2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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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선불교 100년, 침묵의 천둥소리 ● 선불교 100년을 돌아본다

아, 1912년! 그리고 100년

근현대 불교에서 얻은 것과 잊은 것, 그리고 잃은 것

조선의 불교는 일제의 병탄에 밀려 바람에 몸이 쏠리듯이 꺼져갔다. 살아남으려는 온갖 방편이 와글거리는 속에서 선사들은 맹렬한 화두 참구를 통해 세상을 관통하는 가파른 길을 찾아나갔다. 버거운 날들이 쏟아지는 속에서 그들은 낮은 포복으로 근대를 타고 넘었다.

선불교 100년을 지켜온 선사들

조선의 근대는 가혹했다. 1912년 1월부터 조선의 표준시가 폐지되고 일본의 중앙표준시가 적용되었다. 총독부는 조선민력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민간에 배포했다. 식민지 백성들은 제국의 초침에 맞춰 일어나고 일했다. 전국에 걸쳐 토지조사사업도 실시되었다. 조선 땅은 국유화되는 절차를 거친 후에 일본인 회사와 지주들에게 헐값에 불하되었다.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먹을 게 없는 이들은 들짐승처럼 산에 올라 소나무 껍질을 벗겨 그 사이를 긁어냈다. 그런 다음에 집에 들고 와서는 솥에 삶아 두드려 부드럽게 목화같이 만들었다. 안 그러면 떫어서 먹질 못했다. 어린아이들은 흙을 먹었다.

 

일제는 한일병합 초기부터 조선말의 맞춤법 통일안을 주도면밀하게 진행해나갔다. 버젓이 제 나라 글자를 두고도 한자를 쓰며 중화의 변방에 있던 조선을 그들은 함부로 가엾어 했다. 1912년 4월에 총독부 학무국은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펴내어 말과 글조차 통치했다. 1912년에는 대한제국의 사법제

도도 지방법원-복심법원-고등법원의 3심제도로 바뀌었다. 명덕신벌明德愼罰을 지향했던 왕도정치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법치로 다급하게 바뀌었다. 사법기관의 구성과 법관 인사문제 등이 모두 총독의 재량에 맡겨져 사법권의 독립은 무시되었다. 이러한 가혹한 시대상황 속에서 1912년을 치열하게 살아낸 선사들, 바로 그들이 한국 근대불교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경허, 백용성, 박한영, 만공, 한암, 만해 같은 이들이 많이 알려진 이들이다. 이들외에도 있다. 무형문화재 단청장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석정 스님은 우리나라의 드러나지 않은 숨은 선지식으로 호남의 학명 선사와 영남의 혜봉 선사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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