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북치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그 소리를 처음 만난 건 스물네댓 무렵이었다. 오랜 세월을 견딘 아름드리 갈참나무가 우중우중 선 장성 백양사 가는 길. 일주문 지나 절까지 이르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으나 묵혔던 시름을 꺼내어 갈참나무의 큼직한 이파리 사이로 쏟아지던 빛줄기에 비춰볼 만큼은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외로웠다.
군에 입대한 뒤 맞은 첫 휴가에 산사를 찾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백양사는 고향집에서 고개를 하나만 넘으면 되는 곳에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몸을 굽힐 때 나는 충동적으로 아버지의 트럭을 몰아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 그곳을 찾았다.
절 마당은 고즈넉했다. 나는 고요히 종루가 건너다보이는 곳에 앉아 절을 감싼 평온함에 내 몸을 맡겼지만 생각만큼 평화롭지는 않았다. 내가 품은 번뇌들은 그곳에서마저 문전박대를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더없이 쓸쓸해질 무렵 저녁예불 시간이 되었는지 엄장 큰 스님 한 분이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종루에 올랐다. 북채를 쥔 팔을 들어 올리자 소맷자락이 스르르 내려가며 팔꿈치까지 선연히 드러났다. 수행자의 팔뚝이라기보다는 농사짓는 사람의 그것에 가까울 만큼 근육이 울퉁불퉁 박힌 그이의 팔뚝이 가볍게 긴장하는 듯하더니 곧이어 부드럽게 북치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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