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그리고 양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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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그리고 양동마을
  • 불광출판사
  • 승인 2010.09.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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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유희(禪語遊戱)

2010년 8월 1일 경주 안강의 양동마을과 안동 풍산의 하회마을이 우리나라에서 열 번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뉴스가 브라질로부터 날아왔다. 이제는 문화적 저력이 국제사회의 으뜸가는 경쟁력이요, 또 국격인 시대인지라 그 소식은 한여름의 삼복 무더위를 식혀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알고 보면 그 두 마을도 소중한 의미를 지닌 참으로 귀한 마을이지만 더 시선을 집중해야 할 곳은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한적한 곳에 숨어있는 옥산서원과 병산서원이다. 이곳은 그 두 마을을 오늘까지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사상적 근간이요 또 뿌리인 까닭이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과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문화적인 안목과 됨됨이는 500년의 세월 이후에도 바래기는커녕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두 서원의 권역 안에서 또 고갱이를 찾는다면 당연히 전자는 독락당(獨樂堂)이요 후자는 옥연정사(玉淵精舍)일 것이다. 모두 낙향하여 머물던 서재이다. 동시에 수신처인 별당이기도 했다. 거기에 걸맞게 독락당 안에는 양진암(養眞庵)이, 옥연정사에는 완적재(玩寂齋)라고 하는, 한눈에도 불교적 언어임을 알 수 있는 현판이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수행도량 기능까지 겸했다고 볼 수 있겠다. 당연히 예사롭지 않은 유교와 불교의 교섭사가 숨어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회재는 옥산서원 맞은편에 있는 정혜사(淨惠寺)에서 어린 시절 글을 읽었다고 한다. 낙향한 이후 은둔 시절에는 그 절에 머물고 있던 덕망과 수행력을 겸비한, 그러면서도 이름이 전하지 않는 어떤 스님과 친교가 각별했다. 서로 정혜사와 독락당을 오가며 자주 찾았다고 한다. 양진암은 그 정혜사 스님이 아무 때나 스스럼없이 찾아와서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하여 마련한 공간이었다. 동시에 흉금을 터놓고 학문과 사상을 나누고 자연과 인생을 논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옥산서원 전면부인 얼굴에 해당되는 누각인 ‘납청루(納淸樓)’는 후학인 노수신(盧守    , 1515~1590)에 의해 ‘무변루(無邊樓)’로 개칭하게 된다. 그는 서산휴정(西山休靜, 1520~1604) 선사와 교유했다고 전한다. 바꾼 이유를 선시처럼 부기(附記)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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