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기] 낭떠러지에서 매일매일 떨어지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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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낭떠러지에서 매일매일 떨어지는 시절
  • 유계영
  • 승인 2010.08.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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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엄마는 내게 무수한 금기를 물려주었다. 밤늦게 손톱은 깎는 게 아니라든가 하는 관습적인 주문부터 흰 옷은 사지 말라는 식의 다소 독창적인 주문까지. 그렇다고 엄마가 엄격한 사람이란 건 아니다. 엉망으로 비오는 수학 시험지를 다른 누가 못 보게 감춰주기도 하고, 소각장 같은 내 침대 위에 벌렁 누워주기도 하는 사람이다. 다만 금기사항이 많을 뿐이다. 엄마의 가정교육은 밥상 위에서 유난히 엄격했다. 말하자면 나는, 어른의 말귀를 알아듣게 된 시절부터 소리 내어 국을 들이켜 본 역사가 없다. 반찬을 뒤적거린다거나 돌아다니면서 밥을 먹는 다거나 하는 일은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여기까지 적고 보면 나는 무척 말 잘 듣는 순한 어린아이 같지만, 이건 모조리 엄마 앞에서의 이야기다.

내가 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났더라면 오른손으로 뒤 닦았을 애다. 집 밖에 나가면 누구보다 큰 소리로 후루룩 국을 들이켜고 수십 번 반찬 그릇을 뒤적뒤적 헤집던 시절이 있었다. 손톱은 꼭 밤에 깎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면서 들쥐가 주워 먹으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못다 저지른 말썽을 대신해 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 말라는 짓은 희한하게 예뻐 보였다.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그 앞에서는 안 했어도, 내 눈에 예뻐 보이는 짓은 몰래몰래 다 하고 다녔다. 소심하기 짝이 없는 반항이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하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가 황홀하게 느껴졌던 건 누구도 응원해줄 것 같지 않아서였다. 의사가 되겠다는 다짐이나 판검사가 되리라는 각오와는 다르게 보였다. 아버지가 한때 문학청년이었으나 등 돌린 지 오래되어 조금 냉소적이었던 탓도 한몫했다. 시는 대단해 보이지 않았고 쓸모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근사한 일이었다. 게다가 밥벌이도 되지 않는단다. 이게 웬 걸. 나는 그걸 하고 싶었다. 못되고 예쁜 짓 같았다. 창피하지만,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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