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의 삶이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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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의 삶이 변할 것이다”
  • 최지선
  • 승인 2010.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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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만나다 / 미황사 ‘참사람의 향기’

나는 영화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직업의 성격상, 지난 해 거의 1년을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그리 품성이 좋지 않은 탓에 때때로 전화통화로나마 집안의 소식을 듣는 것조차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동생이 이번엔 무조건 가족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며, 아주 특별한 여행을 제안했다고 한다. 나 역시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함이 있어 ‘무조건’이라는 강조에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알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얼마 후, 떨어져 지냈던 1년 사이 동생이 엄청나게 힘든 일을 겪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내 무심함에 정말로 미안하다. 철저히 홀로 외로움을 견디던 동생은 삶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며, 땅끝마을 미황사의 ‘참사람의 향기’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 가족 모두는 동생과 ‘참사람의 향기’로부터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값진 선물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떠났었다. 떠나면서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조건’이었으니까. ‘땅끝마을’에 대한 막연한 낭만이 가슴을 설레게 하였고, 그러면서 낯설기만한 절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의 종교는 천주교이며, 절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설악산을 올라가며 슬쩍 가본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리고 그것들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미황사 대웅전은 넓은 품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첫 만남부터 코끝이 시리게 편안했고 믿음직스러웠다.

 

자꾸만 뒤를 잡는 일상을 뿌리치고

어느 정도 종교적인 선입관이 있었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좋겠다’ 싶었다. 쉬고 싶고,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냥 조용하고 싶어 찾았으니까. 그런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말은 대화가 전부가 아니었다. 참견하고 싶고, ‘된다 안 된다, 맞다 아니다’ 등을 알리고 싶고, 참다가 못해 급기야는 혼잣말을 하게 되는 것. 그런 모든 것들을 침 한번 삼켜 참고 있기를 몇 초. 그렇게 몇 초만 참아 말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달라졌다.

옳고 그름,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 따지고 들수록 오해와 불신만 쌓인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타인을 더 잘 보게 되고,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된다는 것을 느꼈다. ‘표현의 차이지, 크게 다르지도 어긋나지도 않는 것일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후회할 일도, 후회할 행동도 없을 것 같아졌다. 나 스스로에게 참 솔직해질 것 같았다. 편해지고 깊어졌다. 안정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부터 연습하며 일상에서도 꼭 실천하고 싶었다.

7박 8일 동안 가장 크게 감동하여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금강 스님(미황사 주지)의 ‘늘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이었다. 명상과 무념무상에 대한 구체적이고 바른 가치가 생겼다. 마음을 비우고 거둬내라는 것, 그것이 다시 깊게 나를 찾고 바라보라는 것인 줄 알게 되었다. 나는 반대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의 삶이 변할 것이다’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로부터 원인을 알았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나의 순간순간이 행복하여 즐거운 일이 생김으로 기뻐질 것이고, 그래서 일상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야말로 참 평온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일을 잠시 접고, 미황사로 가기 위해 짐을 싸던 밤이 생각난다. 없던 일로 하고 싶었던 내 방에서의 그날 밤. 핸드폰을 반납해야 한다는 규정이 적힌 편지를 뒤늦게 보고,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신경이 무지 쓰여 차라리 취소하고 싶었다. 없던 일이 생겨나기도 했고, 도착할 때까지 일이 잘 안 되는 조짐의 문자와 메일에 잠시 자리 비운 것이 티가 날까 초조했다.

첫날, 두고 온 일에 마음이 뒤숭숭하여 고불식을 빼먹었다. 그날 하루는 핸드폰을 잠시 빌릴까 말까 하며 별별 마음이 다 들었다. 그러다가 내 일이 누군가에 의해 처리가 되었든지 엉망진창이 되었든지 고민할 필요가 없을 만큼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제서야 마음이 내려지니, 수행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시간이 무척 잘 흘러갔던 것이다. 잡념에 온통 신경 쓰며 집중하든, 올곧게 나를 보기 위해 애쓰든, 다리가 저린 줄도 모르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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