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법구] 낙방이 가져다 준 두 스님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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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법구] 낙방이 가져다 준 두 스님과의 인연
  • 조윤선
  • 승인 201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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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법구

불교에 관한 한, 나는 힘든 삶 의지할 곳을 찾아서가 아닌, 의연하고 지혜로운 공부가 탄탄해야 제대로 된 불자라는 생각에 언제나 주눅 듦을 피할 수가 없었다.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떨어지니 대학 입학 때 하늘을 찌를 듯했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그것도 졸업을 바로 앞둔 4학년 때 시험에 떨어지니 앞길이 막막했다. 내가 붙을 수나 있는 시험인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한껏 기죽은 모습을 본 친구가 송광사 수련회를 권했다.

혼자 길을 떠나 송광사에 도착했다.

여성 수련생들은 침계루에서 다 같이 잠을 잤다. 내 옆에는 송광사에 늘 다니던 고아 언니가 잠을 잤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어느 집에 들어가 반 식모살이를 하고 살아왔던 분이었다. 그분은 참 명민했다. 그분을 들인 집도 참으로 너그러웠다. 하지만 남의집살이를 하는 고아의 배움과 나아짐에 대한 욕구가 점점 자라 어느 수준을 넘게 되니, 그 집 식구들의 너그러움은 한계에 달했다.

수련회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나는 밤마다 거의 잠을 안자고 그분의 살아 온 얘기를 들었다. 그분은, 이제 더 이상 머물 곳이 없다고 느꼈다. 그분의 삶에 비하면, 사법시험 떨어진 나의 얘기는 아무리 길게 늘려도 하루 밤도 넘기지 못했다.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는 그분과 나는, 현봉 스님과 함께 셋이서 얘기를 나눴다. 시험의 때, 도시의 때에 찌든 나를 스님은 조계산 이곳 저곳으로 등산에 가까운 산책을 시키셨다. 가끔 숨을 고르기 위해 앉아 쉬면 눈앞에 보이는 풍광을 그대로 담은 한시를 읊어주셨다. 스님의 한시는 마치 풍경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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