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를 평화롭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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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평화롭게 하는가
  • 관리자
  • 승인 2009.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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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그늘

  처마의 물받이에서 빗물 소리가 잦아들고 짙은 회색 구름이 차차로 옅어져갔다. 늦은 점심으로 시장기가가시자 버릇처럼 바다가 그리워졌다. 밤새의 두령무과 회한이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언제고 그곳에 있는 바다가 보고 싶었다. 밤새 함께 흔들거렸을 말도 못하는 그 친구가 보고팠다.

  도시의 거리는 채 마르지 않고 있었다. 차들은 덩이덩이 고인 빗물을 덮치며 질주하고 젖은 회색 건물들은 잔뜩 찡그리고들 있었다. 그 사이로 서너개의 아픔들을 가슴에 안고 그리움으로 물방울 무늬진 옷들을 걸친 삶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간밤으로 먼지를 씻어낸 도시는 욕됨과 혼돈 대신에 외로움으로 가득하기만 했다. 아직도 하늘은 제 모습을 드리우지 않고 있었다.

  억척같던 간밤의 폭우도 바다를 불어나게 하진 못하고 있었다. 바보스럽게 입을 쩍하고 벌리고 침을 흘리며 웃고 있을 뿐 ···. 오는 정월에 첫돌인 조카 태연이 녀석의 아침 인사 같았다. 체기로 숨을 꼴닥이던 간밤의 위기도 잊은 채 내 얼굴을 더듬어 아침잠을 깨우는 녀석의 조그만 손같이···. 파도가 이리저리로 흔들려 내게로 다가왔다. 그 너머로 구름이 쪼개지기 시작하자 틈새와 흠을 비집고 몇 줄기 광선이 불꽃놀이처럼 높이 치솟았다. 방금 터진 내 머리 위 푸른 하늘로 펑펑 터져 번져갔다. 차차로 석양이 어슴푸레히 모습이 나타나면서부터 옹기종기 모였던 구름이 벌겋게 물들어 갔다. 하도 이뻐서 안고 있고만 싶던 바다도 그때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붉게 상기하더니 불빛을 받은 온몸을 마구 흔들어 열광해댔다. 그 편에서 두어뼘 떨어진 곳에선 낮달이 해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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