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해설] 경덕전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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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해설] 경덕전등록
  • 이희익
  • 승인 2009.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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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해설(禪典解說)

신수는 홍인문하를 떠나 용삭(龍朔) 원년(661년)부터 형주(荊州) 능가봉에 있던 의봉(儀鳳) 연간(676~9년)까지의 15,6년간을 홀로 은서(隱棲)하여 다만 오후수행에 정진했다. 56세부터 71.2세라는 고령에 심사묵고했다고 하면, 그의 사상은 당연히 지미현실적(地味現實的)인 「점수점오」가 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능가봉에서의 신수는 달마, 혜가 ,승찬 등과 같이 두타(頭陀)를 행하고 있었는데 그의 성망(聲望)은 점차장강 일대로부터 창안, 낙양까지 미쳐 그를 흠모하여 도속이 많이 모여, 급기야 구시(久視) 원년(700년) 무후의 청을 받고 출경(出京)했다.

이때 신수는 입적하기까지 6년간을 양경(兩京)에 있었고 왕실로부터는 고금에 그 예가 없었다고 할 만큼 후대를 받았는데, 말하자면 신수의 출경이 북종선의 발전에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북종선의 번영을 결정적으로 한 것인데 신수문하의 일재라고 하는 보적, 의복의 선법앙양이 그것이다. 특히 보적이 조정의 부름을 받고 서울의 흥당사(興唐寺) 기타에 주직하여 신수 이상의 교화를 왕실의 외호(外護)로 행하고 스승(신수)과 같이 양경의 법주(法主) 3제(帝)의 문사(門師)로 있었다. 보적은 스스로 달마계의 제7조로 있었는데, 이 사실은 북종의 교세가 그에 이르러 일종(一宗, 一流)을 칭할 만큼 크게 된 것을 뜻한다. 또 보적이 만년 개원 22년(734년)에는 혜능의 법사 하택 신회(668~760년)가 북종선(특히 보적의 선법)에 배격을 시작했는데, 그 동기는 북종선이 선행함을 질투하는것이라 할 정도로 보적에 의한 북종선의 번영이 뚜렷했음을 알 수 있다.

문자에 구애없는 대감혜능

혜능의 속성은 노(蘆)씨다. 선조는 대대로 범영에 살았고, 아버지의 이름은 행도(行稻)라고 했다. 무덕연중(武德年中)에 좌천되어 화남광동의 동남신주(新州)에 옮겨 여기서 영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혜능이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여수(女手) 하나로 교육해 왔는데, 가세는 혜능이 나무를 해서 시장에 팔아 생계를 이어 나갔다.

어느 날 나무를 시장에 팔러 나갔을 때 어떤 사람이 「금강경」을 읽는 것을 듣고 혜능은 그 유수(幽遂)한 이치<理>에 감동되어 그 사람에게 조심히 물었다. “그것은 어떠한 가르침입니까? 누구에게서 전해 받았습니까?” “이는 금강경이라는 경으로 나는 황매(黃梅)의 홍인대사에게서 받았다.” 혜능의 가슴에 심한 구도(求道)의 생각이 뭉클하게 불타올랐다. 혜능은 급히 집에 도망 와 갑작스레 어머니에게 참학학도(參學學道)하기 위하여, 출유(出遊)하겠다는 결의를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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