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요의 재조명
상태바
고려가요의 재조명
  • 관리자
  • 승인 2009.09.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교양강좌 : 불교와 국문학

 고려시대의 시가문학을 논할 때, 다음의 사실을 전제로 해야 함이 실로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조에 와서 비로소 정리되었기 때문에 당시 이조 학자들의 시가에 대한 태도와 정치적 시대상황에 크게 좌우되어 선별되었을 것이라는 틀림없는 유추이다. 그 결과로 현전하는 몇 작품만으로 고려시가의 핵심을 더듬어야함은 안타까운 일이다.

 조선에 와서 고려시가의 정리는 고려시대의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고자 함이 아니라, 조선 국시(國是)의 시가로 변조시켜 보려는 의도가 그 밑바닥에 짙게 깔려 있었다. 그리하여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사리부재(詞俚不載)라는 유교의 완고한 윤리도덕을 척도로 하여, 남녀 관계의 진솔한 정을 노래한 시가는 음사(淫詞)로 저버림을 받아 제거될 수밖에 없었다. 또 세종 16년 예조의 계문(啓文)에 보이는 바 「무애정재(無㝵呈才)는 그 가사가 전혀 불가(佛家)의 말이라서 대단히 탄망하니 이후로는 악(樂)에 쓰지 않게 해 달라」 했던 예가 있는 만큼 불교 관계의 노래는 철저히 배제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이조사회의 치세(治世) 이념이 바로 척불숭유(斥佛崇儒)임에 짐짓 고려시가에 면면히 담겨 있을 고려의 융성하던 불교정신을 캐어낼 주옥같은 작품을 오늘날 우리가 접해 볼 수가 없게 되고 만 것이다.

 일찌기 신라 향가에 보이는 월명사(月明師)와 충담사(忠談師)의 노래가 고려에 와서 더욱 화사한 번성을 이룩했으리라는 짐작이 쉽사리 간다.

 물론,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조선에 와서 고려가악의 정리단계의 문제점도 큰 것이지만, 고려 후기의 정치적 여건에서 빚어진 대중의 의식구조도 한번 짚고 넘어 가야 하겠다. 왕정의 문란과 무인들의 횡포 등으로 사회가 피폐하고 암울한 지경이 됨에 대중의 심성도 자연히 현실도피적인 생활태도를 가지게 되었고,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생활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보아진다. 따라서 시가의 내용도 그런 전반적인 추세로 사뭇 내달은 경향이 여실하다.

 이런 안목에서 <악학궤범>과 <악장가사>, <시용학악보>에 수록되어 전하는 고려가요를 더듬어 보겠다.

 굳이 불교와 관계를 맺고, 불교적 어휘가 담겨 있는, 고려가요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 남녀 간의 애욕을 대담하게 표현한 노래가 <쌍화점>이다.

三藏寺애 블혀라 가고신

그뎔 社主ㅡ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미 이뎔밧긔 나명들명

죠고맛간 삿기上座ㅡ 네마리라 호리라.

 이는 타락한 파계승의 한 작태를 희화(戱化)하여 보여준 것이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