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의 대하(大河) -중국 정토교의 조사(祖師)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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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의 대하(大河) -중국 정토교의 조사(祖師)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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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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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강단

[1] 중국불교의 특질

우리들은 나무아미타불이라 염불하고 있는데, 염불하는 것은 중국 불교에서도 물론 그렇고 어딜 가더라도 염불은 대체로 큰 소리를 내서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는 정토교 계통의 독립한 종파란 없다. 선이라든가 천태, 삼론, 법상, 화엄, 율같은 종파는 있어도 염불에 관한 독립한 종파는 없다.

  송(宋) 이후 연종(蓮宗) 또는 연사(蓮社)하 한 염불을 배우는 종단에 이름이 되었는데 이것들은 독립적으로 벌전하지는 못했다. 어떻게 되어 있었는가 하면 선종의 스님들이 왕생극락을 발원하고 선공부하면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불러 왕생극락을 바랬던 것이 중국 스님들의 염불이었다.

  중국에서는 12,3세기경부터 농민 사이에서 밤에 모여 염불하며 향을 사르고 아미타불을 예배하는 행사가 성했다. 이것을 야집효산(夜集曉散)이라 하는데 요컨대 염불결사(念佛結社)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백련교(白蓮敎)다. 최초에는 매우 엄한 계율의 신앙단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하는 중에 내세를 이상화할수록 점점 현세비판을 하게 되어 그것이 반체제적 언동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농민의 집합을 싫어하던 그것을 사교라 하여 단속을 강화했다.

  중국에서는 몽고족의 원(元)이 천하를 잡고 있었는데 원시대의 끝에 와서 큰 반란이 일어났다. 홍건(紅巾)의 난이라고도 하고 백련교의 난이라고도 한다.

  염불집단이 기반이 되어 원나라 왕조를 뒤집어 엎을 만큼 큰 세력으로 퍼져 갔다. 그 이후에도 자주 큰 반란이 일어났는데 거기에는 백련교의 이름도 자주 보인다. 염불결사가 반란을 일으킬 대집단으로 성장하면서 정부에서도 반복 탄압하였다. 그렇지만 독립한 종파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2] 중국 정토교의 시조 혜원

백련교라는 이름에서 중국 불교사를 아는 분은 혜원(慧遠)스님을 생각할 것이다. 혜원은(A.D 334~416) 83세를 살았다. 중국에서는 혜원스님이 염불의 시조라고 까지 말한다. 그 이유인즉 이렇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1 세기경이다. 후한(後漢)의 명제(明帝)가 꿈에 부처님을 보고 서방으로 사신을 보내어 불법을 구했다. 사신은 도중에 백마에 경을 싣고 오는 축법란(竺法蘭) 가섭마등(迦葉摩騰)의 두 스님을 만나 돌아왔다. 명제는 기뻐서 낙양에 백마사를 세워 경전을 번역하게 했다.

  이 이야기는 설사 전설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그 무렵에 불교가 서역을 통하여 중국에 들어왔을 것으로 알려온다. 혜원스님 나기 약 300년 전이다. 한 종교가 정착하자면 300년은 걸렸을 것이다. 외래사상이 유교나 노장 등 사상 속에서 불교로서 정착하자면 그쯤은 걸린다. 그 무렵에 혜원스님이 크게  노력한 것이다. 혜원은 산서성(山西省) 출신이다. 중국불교의 개척자인 도안(道安)법사에 배우고 양자강 중류인 노산(盧山)에서 활약했다. 노산에는 동림사, 서림사가 있는데 그 초대가 혜원이다. 동림사는 지금도 남아 있다.

  또한 서안(西安) 교외에는 종남산이 있다. 이 산도 유명해서 선도(善導)대사가 이곳을 거점으로 하여 활약하였으므로 성지로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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