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익어가는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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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익어가는 계절에
  • 관리자
  • 승인 2009.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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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구름처럼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감촉에 가을이 성큼 다가온 소식을 느낍니다.

  방문을 열면 짙푸른 감잎 사이로 누르스름하게 익어가는 감 가지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무겁게 매달려 있는 감이 날로 누렇게 변해가는 걸 보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굵은 감알이 문득 옛 도반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물론 함께 승복을 입고 절에서 지냈던 도반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속가로 돌아가서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그의 이름을 밝힐 단계가 아닙니다. 그저 옛 도반이라고만 해둡시다.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옛 도반의 훌륭한 인품과 모습은 늘 신선합니다.

  그동안 소식이 없다가 금년 여름에 한 산중 말사에서 만나 하룻밤을 지낸적이 있습니다. 옛 도반의 첫 인사가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축생(畜生)이 되어 왔습니다.”

  그가 건넨 말입니다.

 “야만승(我慢僧)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건 나의 인사말입니다. 우리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의 건강한 모습은 그동안 그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퍽 다행스러웠습니다. 여전하게 지금도 존경하는 도반입니다.

  오히려 대승 보살의 길은 저 옛 도반과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중국 불교순례를 다녀온 이야기를 잠시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 반가운 이의 입을 통하여 고고한 수행담을 듣는 일도 큰 즐거움의 하나입니다. 겸손의 미덕을 갖춘 큰스님의 덕담같은 일화는 나에게 산 교훈입니다.

  옛 도반은 고인의 옛글에 밝고 생각이 깊은 일면 현대 젊은이의 세계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다재다능합니다. 그의 입을 통하여 듣는 미담 고사(古事)는 홀연 지극한 성스러움을 황홀하게 불러 일으킬 만큼 크게 감동적입니다.

  음악 감상에도 조예가 있습니다. 대장경을 좌우에 갖추고 경전을 탐독하는 가운데서도 음악 감상 시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흔한 표현으로 팔방미인인 셈입니다.

  이제 대승 보살처럼 속가로 떠난 그가 아깝기는 하나 제 역할을 어디가나 하리라 믿기 때문에 그 서운함도 잠시 동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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