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고난과 그 극복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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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고난과 그 극복의 논리
  • 정종
  • 승인 2009.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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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I /고난의 극복

로망 로랑은 영웅의 최선두에 베토벤을 내세우자면서 베토벤의 전기를 썼다. 베토벤의 영웅스러움은 그의 걸어온 고난의 길이 입증하고 고뇌를 뚫고 넘어선 다음에 오는 진정한 환희의 언덕 찾았다.

파스칼(1623~62)이 <팡세>(No679)에서 “영광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서는 고난을 겪지 않으면 아니된다“고 한 것은 옳다. 로망 로랑(1866~1944)은 영웅의 최선두에 베토벤을 내세우자면서 그의 <고뇌를 통한 환희>를 몸소 실천한 베토벤의 전기를 썼다. (1943)베토벤의 영웅스러움을 그의 걸어온 고난의 길이 입증하고 <고뇌를 뚫고 넘어선 다음에 오는 진정한 환희>의 언덕에서 찾았던 것이다. 베토벤이 7번 교향곡을 완성하고 나서 “힘! 그것만이 만인 위에 뛰어나게 하는 인간의 덕이다“ 라고 한 말은 음악가로서의 청각상실이라고 하는 비극을 결국 의지와 용기로써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하는 영웅적인 사실을 말하여 주는 대목이라고 할 것이다. 이 악성은 고난을 극복한 피안에서 진정한 희망과 환희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리라. 절망의 나락에서 생명에의 의지조차 잃었을 찰라에 한 줄기 광명이 암흑을 밝혀 주듯 진정한 환희는 비애를 겪고 난 다음에라야 찾을 수 있고 참된 희망은 절망을 이겨낸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다고 하는 깨달음 하나가 그로 하여금 더 많고 더욱 위대한 작품을 낳게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로망 로랑은 그를 두고 <환희를 거절당한 사람이 환희를 만들어내 인류에게 선물보을 냈다>고 말한 것이 아니랴.

그렇다. 인류의 환희와 복락은 몇 분의 선구적인 고난과 비극과 절망과 불운과 대결하고 또 대결한 피 값으로 선사되는 것이라고 일러두어야 할 것이다. 공덕은 사신(捨身)의 산물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슈프랑거(1882~1963)에 의하면 인간의 일생은 위기의 연속이거니와 맨 처음에 당해야하는 그것은 출산의 위기요, 젖을 뗄 무렵의 위기는 두 번째의 것이요, 미운 일곱 살이라고 일컬어지는 첫 번째의 반항기를 비롯해서 제2, 제3의 반항기 등 갖가지 고비를 수없이 많이 넘어야하는 인간의 일생이다. 출산이 그것에 못지않게 무서운 젊은 시절의 <자아의 탄생>이라고 하는 고통이 있다. 청년기의 정신적 특성은 <자아의 발견>이라고 보는 슈프랑거의 입장에서는 이른바 <제2의 탄생>이라는 이 시기가 자아에게 주어진 최초며 최후의 진통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아에 대한 의식도 없었으며 타아에의 의식이 있을 턱이 없는 어린이 시기에 있어서는 <존재적>인 고독이라면 있을지도 모르나, 좀 어려운 표현이지만, <존재론적>인 고독 따위를 알 리 만무하다. 그러나 자아의 발견은 동시에 고독의 발견마저 수반한다.

우주에 있어서의 자아의 위치에 대한 각성은 동시에 자아의 우주적인 고독의 발견을 뜻하는 것이다. 진정한 고독의 발견은 자아에게 있어서의 가위 우주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삶의 참 출발은 매양 이러한 자아의 고독에서부터서만 열리기 때문이다.

"천상천하(그것은 곧 우주적이라는 뜻일진대)에 유아독존"이라는 어린 불타의 외침은 다 늙어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까지도 그것을 끝내 모르고 말기가 일쑤인 그러한 경우의 <우주적인 고독>의 사실을 앞당겨 이미 깨달음에서 오는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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