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의 향기] 남양주군 운악산 봉선사(奉先寺)
상태바
[고사의 향기] 남양주군 운악산 봉선사(奉先寺)
  • 권현주
  • 승인 2009.05.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경(譯經)의 역사 오늘도 여여(如如)하여라

억겁의 역사, 사람의 역사 그 모두가 한순간의 깨침을 위한 숱한 밑거름이었던가. 오늘도 그 역장(歷長)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오롯하게 자리하는 처처의 가람들. 글대로가 아름다움이요, 그대로가 원만구족이다.

유난히 수목이 잘 가꾸어진 봉선사 가는 길목은 그림처럼 펼쳐 있다. 싱그러운 4월 향기, 하늘로 치솟는 굳건한 장송들의 모습, 신바람나는 사찰 탐방이다.

 봉선사는 경기도 남양주군 진접읍 운악산 남쪽에 있다. 세조대왕의 능인 광릉 가까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는 가람터에 큰법당, 운하당(雲霞堂), 방적당(放跡堂), 청풍루, 종각, 삼성각, 요사채 ㆍㆍㆍ. 모두가 완연한 모습 그대로이다. 1469년 조선 예종1년 선왕(先王)인 세조(世祖)의 영(靈)을 봉안하기 위해 정희왕후 윤씨의 명을 받고 창건불사가 이뤄졌고 학조대사를 주석케 하여 가람을 수호하였다.

봉선사본말사기(奉先寺本末寺誌)에는 서기 969년 고려 광종 20년에 법인(法印)국사에 의해 창건 되었고 운악산에 위치한 까닭에 운악사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것은 정설(定說)이 아니라 한다. 봉선사는 능 안에 있는 절이라 사찰 소유의 산이 없었다. 땔감을 구하는 것도 산이 없어 힘들었고 어러모로 살림살이가 어려웠다. 그래 안진호 스님은 고려 광종 때 이미 지어진 사찰로 앞산, 뒷산 모두가 봉선사 소유의 산이었다는 기록을 만들었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산을 찾는데 앞장섰던 월초(月初) 스님은 수백년이 지난 재판이라 승산이 없었음에도 사찰 유지될 만큼의 산을 돌려받게 되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 때 봉선사 여러 대중 스님들은 산을 찾아 삼보 보호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5년간 탁발로 재판비용을 갚았다는 뒷이야기도 있고ㆍㆍㆍ, 그래서 창건연대가 멀어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창건 이후로 봉선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또 다시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다가 계민선사에 의해 재건되고 다시 6ㆍ25 때 전소되었다. 교학(敎學)도량으로 항시 학문이 부유했던 봉선사는 6ㆍ25 이후 1956년 화엄 스님의 범종각 불사 시발로 가람을 갖추고 더욱 활발한 교학의 수(首)사찰로서 면모를 발휘하게 되었다.

월초(月初)스님은 ‘홍법강원’과 ‘대원강원’을 개설하여 후학을 가르쳤는데 스님의 그러한 공로로 운허(雲虛)스님이 탄생하였다. 허 스님은 신ㆍ구 학문을 두루 섭렵한 석학이셨다. 수도인으로, 독립운동가로, 교육자로서 많은 일을 하셨던 분이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