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화사 다실에 들어서니 혜담 스님은 천상누각의 주인장처럼 앉아 말없이 차를 다리고 있었다. 다실의 한 벽면을 통유리로 터놓아 마치 산사의 경계조차 지워버린 것처럼 산 아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찔하다 싶을 통쾌한 절경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선계가 따로 없다느니 두서없이 말을 주워 삼키면서 창가에 매미처럼 붙어서 있는데, 혜담 스님이 말을 툭 던졌다.
“광덕 스님을 생각하면, 풍경을 즐긴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언젠가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비를 참 좋아하는데, 평생 비가 오는 것을 마음껏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네.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비구가 그럴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실제로 스님은 이렇게 차상을 차려놓고 차를 마신 적도 없으셨습니다. 부득이 차를 마셔야 한다면, 그냥 주스 한 컵으로 대신하고 마셨습니다. 계절을 감상하고, 차담을 나눌 1분 1초의 여유까지도 온전히 삶 전체를 수행과 포교에 헌신하셨던 어른이 광덕 큰스님이셨습니다.”
혜담 스님은 그렇게 들뜬 시선을 조용히 안으로 끌어들였다. 토굴생활을 하지 말라던 스승의 당부. 차담을 나누는 것조차 사치라 여길 만큼 깔깔했던 스승. 가을하늘보다 더 청명하고 맑았던 스승의 모습을 떠올리며 혜담 스님은 마음의 고삐를 여미고 있었다.
빛이 되어주었던 스승
혜담 스님은 광덕 스님에게 참 많은 은혜를 입었다고 했다. 선객으로 살고자 했을 때,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한다며 동국대학교에 들어가도록 길을 터주었다. 그리고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좀 더 공부를 해보겠노라고 했을 때는 ‘교수는 머리 긴 사람도 할 수 있지만, 수행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 이제는 자유인이 되라.’며 참다운 중노릇을 일깨워주었던 은사였다.
“그때 대학원 가서 공부하고 뜻대로 교수를 했다면 어땠을까? 전 지금이 참 좋습니다. 이렇게 ‘중답게’ 살 수 있다는 것에 매일 매일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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