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망명수기 <12> 억압과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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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망명수기 <12> 억압과 분노
  • 달라이 라마
  • 승인 2008.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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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불교 총수이며 국가원수인 비구 달라이 라마의 망명 수기 : 내 나라, 내 겨레

 제7장 억압과 분노

 귀로에 고향을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근심에 찬 여로에서 행복한 순간이었다. 4살때 떠난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며 티벹??순후한 시골에서 태어난 것을 다시 한번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모택동 영도 하에 행복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중공이 얼마라 훈련을 시켰다 끔찍했다.

 승려들만 정직하게 말했고 앞날을 걱정했다. 중공은 집단농장을 시작했고 농부들은 분개했다. 고승들은 중공이 앞으로 할 짓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마을 지도자들도 중공식 개혁을 비평하며 탄압이 갈수록 격해진다고 했다.

 나는 중공측에다 개혁은 하되 중공에서 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티??사람들의 여건도 참작하라로 했다. 여기는 북경보다 더 무례하고 가혹했다. 그들은 티??사람들을 무시했고 어떤 장성은 병력을 증강해서 무조건 복종시키고 말겠다고 했다. 장래가 암담할 뿐이었다.

 그래도 연도마다 수십만이 몰려와 인사를 했다. 북경에 있을 때도 동북 티??사람들이 귀로에 들려 달라고 찾아 왔었다. 지진때문에 자동차 길이 닿으면 꼭 갔고 그렇지 못하면 수행한 고승들을 대신 보내면서 동포들의 적개심이 고조되는 현장을 많이 목격했다. 중공군도 이해 부족과 두려움에 격앙된 상태였다. 나는 그들에게 과격하게 하지마라 타이르고 우리 동포쪽에는 뭉쳐서 평화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중공이라도 좋은 점이면 받아들이라고 했다. 이 충고는 바람 뿐이지 모두 폭력이라도 써서 대항하겠다는 심사였다. 북경에 가던 1년 전 보다도 더 적대감정이 사무쳐 희망이란 물거품처럼 느껴졌다.

 중공이 새로 정한 국격으로 들어와 그들 사령부에서 며칠, 절에서 며칠 지냈다. 바로 여기가 지구해방위원회가 생길 곳이다. 위원이라고 만나니 모두 중공 지시대로 움직였고 사령관이 조종했다. 여기도 땅을 징발당한 농민들이 분노를 터뜨리는 하소연을 들려줬다. 폭력이 막 터질것만 같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곳 주민들은 총기를 갖고 있었는데 중공준에 압수당하기 전에 대항할 것은 뻔했다.

 여전히 동포들은 몰려와 나를 경배했다. 여러분의 애국심을 보게 돼서 기쁘다고 격려했다. 또 라사에서 잘못해 변방의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다고도 했다. 준비위원회가 활동하면 뭉쳐서 우리 땅이 다시 된다고 위로했다. 중공군 통치지역은 중공과 흡사했고 비관적인 면도 있었으나 한 편으로 한가닥 희망을 기대했다. 중공에는 사찰이 모두 폐허가 됐었다. 승려라고는 노인들 뿐이고, 절에 오는 사람들도 감시 때문에 없었다. 내몽고에는 학승들이 많다고 들었고, 북경서 내몽고 사람들을 만났다. 중공 젊은이들은 출가하기 싫어하고 종교단체로 공산주의 선전을 하고 있었다. 이런 풍조가 중공군 점령지구에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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