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我强化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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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我强化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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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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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神建康에 관한 48章(5)

第三義 유예(遊藝)ㅡplay pleasurably(놀이는 신나게)

인간 생명의 가장 자연스러운 생존양식의 하나가 논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고금동서의 여러 학자나 도인들에 의해서 별의별 표현으로 다 서술되어 왔다. 그런데 논다는데 대해서는 뭐그리 위대한 학자님들이나 도인들의 학설에 귀기울일 필요조차 없이 우리 모두를 스스로의 가슴속에 물어 보기만 하면 충분하다. 누구나 다 「자 그러면 놀러가세!」하면 어른이 나 아이나 남녀노소 구별없이 그저 입이 벙긋벙긋하면서 좋아한다. 아니 이렇게 다들 좋아하는 「놀이 」가 과연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고,. 자연스러운 것은 건강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가장 자연스러운 「놀이 」정신을 빼놓고 정신건강을 논할 수 없다.

사실 어린애들이 혼자서나 또는 여럿이서 노는 것을 가만히 관찰하여보면 그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이 없다. 그야말로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이고 원효대사의 「유심안락(遊心安樂)」이고 니체의 「최후의 진실이자 유일의 진지 」이고 「일 잘하는 것과 더불어 잘 논다는 것 ㅡ프로이드 」의 정신건강의 二대 푯대인 것이다. 놀이가 가장 자유스럽고 자연스러운 인간존재 양식의 하나라는 것은 체내에 울적되는 신체적 정신적 잉여에너지를 카타르시스 하는데 그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그 원인이야 어쨌든간에 축적된 잉여에너지가 술 ㅡ술 잘 유출되면 인간생명의 균형은 잘도 잡히는 것이다.

여기서 노는 것이 그렇게 자연스럽고 만인에 환영받게 되는 것이 또한 그것이 덮어놓고 「즐겁다 」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놀이의 즐거움은 노는 사람이 즐겁게 무심코 놀기 때문에 옆에서 보는 사람들도 꼭 같이 그 즐거움이 옮아 기분 좋아지는 감정이입성(感情移入性)이 인간의 어떤 다른 행동보다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잘 노는 사람들은 자타 공히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극치에 이르면 「福이 나는 것이다.」즐거운 박카쓰의 신이 강신(降神)하니 이 이상 더 즐겁고 재미나는 인간행동이 있겠나? 이리하여 정신의학 출신의 20세기를 대표하는 석학중의 한 사람인 E.H. Erikson은 「play pleasurably(놀이는 신나게)」라는 것이 그 본연의 태세고 그것이 이를테면 죄악감 등으로 협잡되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정신공해라는 정신의 찌꺼기가 대량 유출되기 쉬운 현대야 말로 더 많은 놀이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이 필요한 것이다. 남의, 이웃의, 또는 동료의 인간적 안녕(安寧)이나 존엄을 건드리지 않는 한에서는 무제한의 대량의 놀이가 필요하다는 정신의학적 처방이 내려지는 것이다. 즐겁고 신나는 놀이가 많을 때 개인이나 집단 사회나 또는 역사가 정기. 용기. 기백. 모험. 대참등의 인간덕목이 넘쳐 참신한 풍모를 나타내나, 놀이가 없이 재미도 없고 쾌와 낙이 없는 인생은 메마르고 병들어 조만간에 스스로나 남의 인간생명을 공격하여 파멸로 몰고가기 쉬운 것이다. 그 구체적 예가 무기력 등으로 대표되는 여러 정신신체증이고 우울증이고 이웃을 못살게 모질게구는 침략수탈인 것이다.

第13品 파자소암(婆子燒庵) ㅡ감정의 진실 ㅡ

유명한 선화중의 하나인 피자소암에 관한 이야기는 비록 선이나 불교와 관계없는 사람에게도 널리 알려진 재미있는 이야기다. 사람사는 동네를 약간 떨어져서 홀로 외로이 참선수도하는 갸륵한 한 젊은 중을 지켜보던 동네 할멈이 그의 닦음의 정도를 알아보려고 하루는 그녀의 묘령의 딸을 시켜서 차분히 등에 엎여 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할멈은 몰래 숨어서 그 젊은 중이 어떻게 나오나를 지켜 보았다.

그랬더니 그 젊은 중은 방향도 그윽한 묘령의 낭자가 더더군다나 그녀 상체에 있는 재미의 항아리를 두개나 살풋이 등에 갖다대는데도 「에헴 」내가 이래도 「고목한암(古木寒岩)」인 답시고 모르는 척하고 버티고 있더란다. 할멈은 몹시 실망한 나머지 그만 그 암자에 불을 질러 그 젊은 수도승을 내쫓아 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선의 공안을 둘러싸고 선계(禪界) 불교계(佛敎界)할 것없이 여러가지 이론들이 분분하다. 그래서 오늘은 이것을 정신건강의 입장에서 한번 살펴본다. 대채로 옛날의 입산수도나 오늘의 학교교육이나 다 청소년들이 공부를 할 때는 금욕이 좋은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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