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샘] 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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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샘] 머저리
  • 관리자
  • 승인 2008.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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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일이 밀려 있는데 난데없이 바다가 보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 걷잡을 수가 없었다. 버스로 광주까지, 광주에서 다시 자동차를 갈아타고 여수로 갔다. 오동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비단결 같이 고았다. 나는 까닭도 없이 한숨을 쉬고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돌아오는 길은 차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새나라」라는 밤차였다. 저녁때 광주서 타고 밤 열시 넘어 서울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차는 앞차의 사고로 연착되어 대전 못미처 역에서 머문채 움직이지 않았다. 승객들은 짜증을 냈으나 나는 플랫폼을 거닐며 하늘을 바라 보았다. 별빛이 아름답고 먼 들판에 밤안개가 푸르게 흐르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한 것은 자정 넘어 두시 반, 역에서 기다리기로 했던 내 차는 야간 통행증이 없어 그대로 들어가고 야간 통행증을 가진 다른분의 차가 대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곧 출발해서 여의도로 향했다. 나는 여의도 아파트에서 일년 이상 혼자 살고 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밤중 두시반에 나는 내 아파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른 동물도 그렇겠지만 인간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이르면 후각이랄까 습관같은 것이 움직여 저도 모르게 그곳을 찾아 들수 있는것이 아닐까. 후각이니 관습이니 하는 추상적인 방법만이 아니다. 사람이 한 장소에서 1년 이상을 살고 있으면 제 집 근처의 구체적인 표식물이 머리속에 박혀 있어 그것을 목표로 틀림없이 제 집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내 집의 소재를 전혀 파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차를 몰아 이리저리 돌아 다니는 동안에 방향까지 잃어버려 어디가 어딘지 더군다나 막막해지기만 했다.

  눈앞에 뻗어 있는 것은 기하학적인 정연한 도로뿐,  「내 집이 어디요?」 하고 물어 볼래도 한밤중의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없었다.

  할수없이 운전사에게 「가까운 경찰서나 파출서로 가자」하고 나는 기운이 빠졌다. 우리가 찾아간 파출소 젊은 경찰관은 간단히 내가 찾는 아파트건물을 일러 주었다. 내 집은 바로 그 근처였다. 아무도 없는 아파트 방 안에 혼자 앉아 나는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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