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망명수기 <1> 머리말
상태바
달라이 라마 망명수기 <1> 머리말
  • 달라이 라마
  • 승인 2008.01.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티벳 불교 총수이며 국가원수인 비구 달라이 라마의 망명 수기 : 내 겨레, 내 나라

-티베트 불교 총수이며 국가원수인 비구 달라이 라마의 망명 수기-

히말라야는 이름 그대로 영겁의 세월에 눈을 덮은 채 묵묵하다. 그 줄기에 인간이 묻혀 살며 바깥과는 천 년의 담을 쌓고 재미있게 살아 오다가 아주 잊혀져도 감응이 없다. 갈라진 둘 중에 하나가 없어진 월남보다 훨씬 앞서 통째 사라진 나라가 거기 있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토번(土蕃)이라 나오고 요새 국어사전에는「토박이로 사는 미개한 겨레붙이」라 알려준다. 그 때의 다른 구법유학승들도 이 나라 조정의 후대로 인도에 다녔고, 고구려 원측(圓測)의 저술을 중국에서 이 나라로 전해져 지금까지 이 나라 장경에 빛나고 있다. 역자도 어떤 나라에서 살 때 가구째 집을 이 나라 사람과 주고 받느라 서로의 객고를 풀고 또 어쩌다가 이 책의 저자까지 수월찮게 만나 책도 얻은 지 어언「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저자의 27살 때, 이 책이 출간됐고, 8년이 지난 뒤 저자를 상면했다.

역자는 저자보다 2살 아래고 키도 아래고 얼굴 길이는 그 보다 더욱 짧았다. 그러나 망명 생활에 절은 그의 모습이나, 서울서 천방지축 날고 기며 꼭두새벽에 산정(山頂)의 그의 처소로 들이닥친 역자의 형편은 비슷했다. 작은 나라, 힘없는 형제였다. 저자 <달라이 라마>와 그의 나라 티베트는 옛날에는 우리와도 서로 잘 알고 지냈는데 지금은 우리를 포함한 다른 세상도 왜 그들의 존재를 외면하고 있는가? 달라이 라마라면 신비한 기담(奇談)이 유식으로 통하고, 티베트는 마르코 폴로 때 만도 못해서 유명 무명 글장이의 괴담 무대로 역수입된 우리 주변은 무관심의 대상에도 끼워주지 않는다. 지금 인도의 불교 성지는 티베트의 피난민들이 도맡다시피 신앙열을 사르고 있다. 그 무더위 속에서도 칙칙한 고향 의상으로 차려 입고 구부정하게 움직이며 한 손에 소형 도르래 다라니 틀을 돌리며 입으로는 염불을 하느라 쉴 줄을 모른다. 탑을 돌 때는 향불을 두 손으로 들고 염불하며 불상 앞에서는 그 나라 특유의 오체투지로 망향의 시름을 잊고 살아간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부터 밀교가 있었지만 고려의 불교는 티베트 풍의 흔적을 강하게 전했다. 티베트가 불교와 접하기는 4세기라 한다.

하늘 쪽으로 가까운 땅에서 유목민의 토속적 무속신앙에 겨우 의탁한 때이니 고유한 문자도 없고 군신이 두루 무지해서 걸핏하면 이웃과 쌈질이라 이라크와 중국은 협공할 약속까지 했었다. 3백 년이 흘러 당시 왕조의 5대 치세 때부터 부대끼다 못한 네팔과 중국이 공주를 왕비로 내주며 화친을 맺으니 불교국 왕비들을 위하여 절을 짓고 까막눈도 인도로 유학을 보내 중천축국 문자를 본뜬 국어를 만들어 불경을 번역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그 나라 개명의 효시였다. 인도 말을 모체로 했으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다시 되돌려 복역하면 원전이 나올 정도로 잘 되어 현존하는 대승연구에는 지보적 집대성이다. 또 경전을 불상보다 더 위하고 일반 가정까지 경서를 경배의 상징으로 소중하게 여겨 인멸된 역사상 민족들과 비교하면 고도의 문화 민족임이 여실하다. 불교라는 외래사상은 토속신앙과 갈등이 없지도 않았다. 당시 인도불교가 학문 일변도로 고답적인 교학과 그와는 정반대의 인도 정통사상과 아류들의 주술의식이 전염돼 티베트 불교도 교학 연구에 불교 원류 중관사상을 크게 발전시키기도 했으나 한편은 밀교의 타락이 본연의 교설하고는 괴리된 습속으로 스민데다가 공교롭게 천연두가 만연한 때 불교 탓이라 몰아대는 토속신앙의 편승으로 폐불(廢佛), 승도환속(還俗)의 박해를 감수했다. 

그래도 변방으로 피했던 왕자들이 출가해서 교세를 재건하고 배불왕조가 무너지자 불교도 그 참에 정화한즉 처음 인도인이 전교한 구파(旧派)가 붉은 모자의 티베트 원주민이 중흥시킨 신파(新派)는 노란 모자를 썼다. 이 중흥의 덕파가 교단의 수장은 관음보살 화신으로 국가를 수호하고 왕생한다는 전통이 됐다. 거기다 몽고의 칸이 그들의 글을 만들어 준 티벳을 따르며 바다 같은 어른이라는 달라이 라마 칭호를 봉헌했다. 두 내륙국이 바다를 그럴듯한 선물로 발상한 사실부터 기발하다. 교세는 점점 인접국을 전법해서 제 5대 달라이 라마는 청나라 황제에게 문수보살 법명을 주며 현재의 수도 라사에는 관음보살의 주처 포타라카의 지명을 딴 포탈라 궁을 창건하고 십만의 승도가 상주하는 사상 최고의 사원에 평균 20년을 수학하는 교육기관도 두었다. 교과에는 인도불교에서 중국 선종까지 망라했는데 소 같은 소를 보지 못해 심우도를 코끼리로 대신했고 수레의 차를 목마라 번역했다니 그 얼마나 외진 나라였나 짐작이 가고도 남으나 그런 곳이기에 산일(散逸)되지 않는 자료들이 발상지 인도불교 연구에 절대적 자료들은 간직할 수 있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