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연구] 5. 인간은 죽으면 그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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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연구] 5. 인간은 죽으면 그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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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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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연구/ 연재 제5회

          이글을 쓰는 것은 靈界를 규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일부 인사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것은 더우기 아니다. 

          독자 여러분이  [인간은  육체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자는 것 뿐이다.   

   육체에서 벗어난 유체를 옷으로 입고 있는 영혼은 그의 옷을 언제까지 걸치고 있는 것일까?

   대개 육체에서 벗어난  대로의 유체는 극히 조잡한 유체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영혼의 핵인  자아의 발달 정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그것은 대체적으로 유체로서는 가장 하급의 조잡한 일종의 물질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유체를 물질이 라 할때 [그러면 그 유체가 우리 눈에 안보이느냐?]할 것이다.  이 유체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물질보다도 정묘하여 마치 공기와도 같이 안 보인다. 이것이 영혼자아가 입는 옷감이며 옷인 것이다. 육체를 덧옷으로 본다면 유체는 겉옷이고,  육체를  겉옷으로 본다면 유체는 속옷(내의)이다.그런데 영혼은 이 속옷을 여러겹을 입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이 정화되어 그 의식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그의 옷도 정화되어 조잡한 유체를 벗고 보다 정교한 유체를 걸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이 높을수록 그의 유체는 정밀 정교하다.  의식의 정도에 따라 부단히 그의 영적 환경이나 조건이 향상된다. 흔히들 천녀의  옷소매를 구름과 같이 안개와 같이 부드러운 비단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점에서 수긍할 만 하다.

   영적 자아가 향상하여 정교한 유체를 갖게 되면 이를 영체라 부르게 된다. 유체는 그만큼 에—  텔체로서는 둔탁하고 조잡한 형질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체의 핵심,  영체보다 다시 정묘한 에—  텔체의 精麗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그의 근본은 순수한 본성자아의 자기상실로 인하여 나타난 착각현상의 차별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자아의 각성에 따라  혹은 유로 혹은 정밀하게 혹은 거칠게 그의 형질을 나투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마음정도에 따라 옷(유체)의 정도가 다른 것이다.

[8] 에— 텔체와 심성관계

   앞서 필자는 에—  텔체를 유체,  영체,  본체로 구별하고 이들은 육체와 함께 자아가 행사하는 기관으로서 각기의 작용을 분담한다고 하였다.  즉 육체는 주로 욕망을,  유체는 주로 감정을,  영체는 주로 이지를,  본체는 주로 예지를 맡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위에서 유체가 가지는 여러 층의 구성을 살피면서 그의 정추에 따라 유체 내지 본체가 구별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여기서 에—  텔체와 심성과의 관계를 잠간 살피고 지나갈 필요가 있다.

   예지,  이성,  감정,  욕망,  이 4종의 인간 심성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경험적 관찰로는 욕망은 육체적 욕구를 충족 보전,  확대시키고자 하는 본능적 욕망으로서 그의 발동 형태는 극히 조잡하다. 강한 자극과 격렬한 충동을 상반한다.  다음에  감정은 개아의 안정상황의 표정이다. 결핍에서 공허를,  위험에서 공포를,  조화에서  안정을,  활동에서 환희를 충족에서 안락을 향상에서 긍지를.....   불안의 제거와 욕망의 충족과 이상의 달성에서 생명이 느끼는 상태를 나타낸다.

   다음에 이지는 감정과 욕망에 물들지 않은 깊은 심성의 빛이다.  이는 자타 분별 없는 자아에서 비치는 분별이며 자기 분석력이다.  이에는 대립이 없다. 일체평등 無私의 자아가 발하는 본연의 照破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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