最終的인 佛子
참 도리를 찾는 사람에게 「우상(偶傷)」은 커다란 유혹이 되면서 위협이 된다. 「우상」을 고집하는 수도자는 제 아무리 목마르게 깨달음을 구하더라도 이미 외도(外道)에 떨어져 있으며 도를 구하면 구할수록 더욱 부처의 허상(虛像)에 집착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참 불상을 만날 기회를 잃어버리기가 십상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불자는 행여 그 어떤 우상을 자기 앞에 두게 될까 두려워하며 경계한다. 그는 자신을 속하게 될 유형 무형의 온갖 우상을 거절한다. 원효(元曉)는 법을 구하는 마음이 높고 청정하였던 까닭에 세상의 법도나 소승(小乘)의 계율(戒律)이라는 우상을 거절하고, 자유(自由)하여 마침내 견성(見性)할 수 있었다.
옛날 영험(靈驗)이 용하다는 불상을 모신 절이 있었다. 치성하러 모여드는 사람들로 절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어 세속의 말로 「번창일로(繁昌一路)」에 있었다. 사중(寺衆)들도 이와같은 대중들의 「신앙(?)」에 어느덧 동화되어 갔다. 그러던 어떤 날 대사님 한분이 이 절에 오게 되었다. 그가 오던 날, 그 날도 다른 날과 다름 없이 불상 앞은 영험을 비는 대중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이 사실을 미리 들어 알고 있던 대사는 뜻하는 바가 있었다. 그는 대중을 헤치고 불상 앞으로 다가갔다. 두 손을 번쩍 들어 불상을 쳐들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서 앞 마당으로 나왔다. 그것을 보는 대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돌층계까지 오자 불상을 머리 위까지 치켜들더니 단숨에 밑으로 내동댕이 쳤다. 불상은 돌모서리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눈 깜짝하는 사이였다. 누구하나 붙들고 말릴 겨를도 없었다. 무엄하기 짝이 없는 대사의 행동에 입이 딱 벌어져 할 말을 잃었던 대중은 다음 순간 불상의 참모습을 보았다. 황금빛 찬란하던 전의 모습과는 달리 조각난 그것은 한낱 흙으로 빚어 만든 「우상」에 지나지 않았다. 부처의 모양을 닮은 우상이었다. 그 동안 그들은 우상을 받든 외도(外道)들이었다. 대사가 우상을 깨버림으로써 깜깜하던 눈을 뜨고 정도(正道)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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