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부휴선사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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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부휴선사의 사상
  • 김인덕
  • 승인 2008.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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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Ⅱ 전통사상의 현재(9) 서산대사

(1) 쇠퇴한 선문(禪門) 재정비
나라와 겨레가 왜적(倭賊)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스님들이 갑옷을 몸에 두르고 구국전선(救國戰線)에 앞장 섰던 헌신적 활동도 위대하지만, 당시 탄압이 심했던 이조 사회에서 불교계 자체를 정비·강화하고 거룩한 불법혜명(佛法慧命)을 이어 주신 큰 스님들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도 남는다.

부휴선사(浮休禪師)의 경우도 그렇다. 서산(西山)대사를 뒤 이은 사명(四溟)대사가 의승군(義僧軍)의 총지휘관으로서 그렇게도 훌륭히 국가적 활동에 헌신할 수 있었던 배후에는, 법력과 덕망이 높은 부휴선사가 불교계의 장래를 맡을만한 스님으로서 지리산에 계셨던 것이다.

부휴선사(1543~1615)는 법통상 사명대사(1544~1610)의 아저씨 뻘 된다. 즉 사명대사의 스승인 서산대사(1510~1604)와 부휴선사는 다 같이 부용 영관(芙蓉靈觀,1485~1571)의 제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명대사는 부휴선사를 ‘형(兄)’이라고 부를 만큼 두 사람 사이는 가까웠다. 이 두 스님은 나이도 비슷했거니와, 시대적 요청인 국가수호와 종단 강화라는 거룩한 사명감에 마음 모아졌으므로, 서로는 정의가 두터웠고 격려와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곧 사명대사가 흉악한 왜적을 이 땅에서 몰아 내고 또 일본에 건너 가는 등 나라일로 불교계를 돌볼 겨를이 없으므로, 부휴선사에게 불법전통의 계승과 불교수행의 선문강령(禪門綱領)을 재 정돈 해 주도록 다음과 같이 간곡히 부탁했다.

‘부처님이 가신지 삼천 여 년
거룩한 불법은 날로 쇠퇴해 가고
어지러운 마어(麻語)에 사람들은 정신 잃고,
………
오직 오늘에 바른 안목 지닌 우리 형이
퇴폐한 강령 재 정돈하지 누가 하겠소.’
(四溟集 卷三 贈浮休子)

또 부휴선사도 사명대사에게 ‘나라에 보답하고 종단을 재건하여, 왜적을 물리치고 불법을 떨칩시다’라는 뜻의 격려(浮休堂集 卷四 贈鐘峯)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두 스님의 심기(心機)가 흔연히 일치했으므로, 사명대사가 눈부신 활동을 전개했던 만큼 부휴선사도 비상한 노력으로 종단 강화에 힘썼다.

그 대표적 예가 제자양성인데, 7백여 명의 제자 가운데의 수제자 벽암 각성(碧巖覺性)은 사명대사를 뒤이어 8도도총섭(승군대장)이 되었고, 나라의 보조 없이도 남한산성을 3년 만에 축성하여 나라의 수도권 호위에 기여케 했던 분이다.

(2) 격외선(格外禪)과 전통불교 계승
시대가 혼란할수록 전통문화 속에서 가치기준을 찾아 당면 과제를 해결하게 되듯이, 부휴선사도 우리나라 전통불교를 충실히 전승했고 불교의 본질에 정통했었다. 곧 그는 선(禪)과 교학(敎學)이 둘이 아님을 주장하는 부용(芙蓉)과 서산의 선사상을 잇고 있다. 특히 서산대사는 세종대왕의 선교양종 통합정책이 있은 후에도 불교계가 선종·정토·간경·다라니파 등 네 파벌이 난립 유행하던 것을 조정 통일코자 고심했다. 즉 교학은 부처님 말씀이고 선은 부처님 마음이니, 가르침(敎)을 알지 못하고 실천(禪)만 하면 헛수고로 끝나고,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선에 들지 않으면 불법의 진실을 터득치 못한다는 견지에서 교선일치(敎禪一致)를 주장했다. 그래서 교학과 선은 불법수행상의 시종(始終)이라는 다름이 있을 뿐이며, 교선을 분별 대치시키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 마음을 터득하는 일이 불교의 근본 목적이라고 보아, 교화 선이 통일 융화된 격외선지(格外禪旨)를 정립했었다.

서산대사 이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파와 선파 사이에 다툼이 생기고, 교파 가운데서도 화엄 위주의 화엄파가 생기거나 서산계통에서도 서산의 사상을 잘못 이해하는 무리가 생기는 등 불교계는 또 다시 혼란상태에 빠졌다. 이때에 부휴선사는 우리나라 전통적 통일 불교의 수행방법인 정혜쌍수·교선일치·염선겸수(念禪廉修) 등을 재현할 선구자로 되어 퇴폐한 불교계를 부용·서산대사 계통의 선지(禪旨)에 따라 재 정돈함을 사명했고, 서산의 수제자 사명대사로부터 산문종풍(山門宗風)을 부탁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선사는 불교의 본질에 매우 정통하고 있었다. 선종이 중국발달 불교에서 생겨 발전된 수행 법이므로, 그 수행 법이 자칫 근본불교에서 벗어날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러나 선사는 연기(緣起) ·무아(無我)를 올바로 보아 깨닫도록 가르치는 원시불교의 정지정견(正知正見)을 잘 알았고, 만물이 공성(空性)임을 파악하는 반야(般若)라는 예지와 그 실천(자비·방편)도 정통했으며,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인식하고 무소득정관(無所得正觀)을 잘 알았었다. 그러므로 선사는 금강혜안(金剛慧眼)을 개발 증득하여, 우주를 관파하고 영겁 무명을 벗어나도록 강조했다. 선사가 남긴 많은 시송(詩頌)등에는 이 혜안은 정안(正眼)·활안(活眼)·비안(費眼)등으로 표현되어 있었고 그것을 열어 발휘하도록 줄곧 강조함을 볼 때, 그의 선풍이 제일 먼저 이 혜안 성취에 목적했음을 알 수 있다.

(3) 참선(參禪)의 실제와 그 경지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부휴선사는 전통적 선풍을 계승하였는데, 실제적으로 선을 닦는 방법은 어떠했던가?
전통적 참선을 중요시 했던 만큼, 선사는 조주의 무자공안(撫字公案)에 따라 커다란 의심을 내세워 마음 통일하는 간화선을 닦았음은 말할 나위 없다.
선사는 우선 고요한 자리에 앉아 조용히 분향(焚香)하여 좌선했었다. 곧 천애무인경(天涯無人境)에서 또 심산유곡 한적한 장소에서 그리고 추풍낙엽이 울리는 산골 창문 아래서, 몸을 깨끗이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써 오로지 옛 가르침을 배우고자 했었다. 이렇게 정중히 대자연의 품 안에서만 인간은 그 신비의 노래나 진실을 읽을 수 있고, 아무런 얽매임 없이 분별망상·언어희론에 앞서는 참다운 우주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불교는 본래 만물의 가치성을 개발하여 그 활달한 기능이 충분히 발휘되고 서로 조화되게 하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선사도 누구에게나 평등히 갖춰진 가능성 즉 금강혜안·반야정관을 개발할 것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쉽게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전심전력을 기울여 참구수선(參究修禪)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깨달음과 혼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념회기(一念回機)· 일념회광(一念回光) · 회광반조(回光返照)등 표현으로 그것을 선사는 강조했었다.

또 언어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진리의 세계에 도달할 대장부는 무엇보다 자기의 마음과 본질을 알아보고(識心見性) 본원에 돌아 가야 함(返本還源)을 주장하고 있다. 참선하시는 스님들은 누구나 깨달음의 경지나 진리의 세계를 자연이나 어떤 사물에 의탁하여 표현하지만, 부휴선사의 경우는 보다 유창히 또 아름답게 읊어지고 있다. 즉 진리의 세계나 우주의 본질은 인간의 생각이나 문자를 넘어 서고 있으므로, 백 척 장대 끝에서도 한 걸음 내딛는 기백과 야생 소를 길들여 타고 오는 철저한 정진 수행을 재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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