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산책 96
> 미륵리 절터의 내력
미륵리 사지의 창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으나, 『동각잡기(東閣雜記)』 본조선원보록에 “남은은 몰래 도망하여 미륵원(彌勒院)의 포막(圃幕)에 숨어 있었는데 추격하던 군사가 죽였고…”와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주목부」조의 “미륵원은 주 서쪽 50리에 있다. 일명 광수(廣修)라고도 한다.”고 하여 위치를 비정하고 있다.
사찰의 존속시기에 대해서는 『삼국유사』 아달라왕 기사의 “입현(立峴)은 지금 미륵대원의 동쪽에 있는 고개다.”와 조선 선조 때 편찬된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 “어두운 새벽에 적 수백이 나와서 미륵원 앞 들판에 진을 치자…”라고 기록하고 있어 16세기 중엽까지는 사찰이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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