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도에의 길
부처님은 인도「가비라」성의 태자로 태어났다. 그래서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모두 성격에 맞지 않았다. 부처님은 선천적으로 보통 사람과 다르게 태어났던 것 같다. 사람의 성격은 천차만별이어서 주색을 즐기는 사람, 돈을 탐내는 사람, 명예나 권세를 추구하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다. 부처님은 위와 같은 욕망은 전혀 없었고 다만 「생(生) · 노(老) · 병(病) · 사(死)」에 대하여 깊은 의문을 품고 늘 사색에 잠겨 있었다.
이 우주간의 어떤 물체를 막론하고「고정불변」이란 찾아 볼 길이 없다. 태양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으니 우리 인간의 변화는 눈에 띌 정도로 훤히 보인다. 즉, 태어나 외기에 접촉되어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릴 때부터「(고)苦」가 시작된다. 다음 늙어 병들어 죽는다. 이 사이를 보통 70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못박았다. 옛날 중국의 진시황은 6국을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에 삼천 궁녀를 거느리고 있었으나 52세에 객사했다. 그때 진시황의 권세쯤 하면 백 세 이백 세 살고도 남았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죽음이란 늘 도사리고 있다. 어떠한 힘으로도 이를 면할 수는 없다. 이 이치를 부처님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헌 신짝처럼 버리고 수행 길에 나섰다.
그 당시에 수정주의(修定主義)자들은 주로「고행(苦行)」에 주력하여 생 · 노 · 병 · 사를 탈피하려 했으므로 부처님도 처음에는 고행에 주력했다. 단식도 해보고 가시밭을 걷기도 하고 한쪽 다리를 들고 온종일 서 보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성취할 수 없다고 단념하고 보리 나무 아래에 풀로 금강좌를 만들고 가부좌 틀고 앉으면서 성도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뜨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깨침에는 맹세가 중요하다. 즉 대결심이 필요하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깨침에는 분발심 없이는 성취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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